2019.12.12 목
연재/기획서랍 속 사랑을 세상 밖으로
‘어둠 속에서 세상을 비추는 달처럼 살고 싶어요’[서랍 속 사랑을 세상 밖으로] 정민진 씨
고해린 기자  |  rin@news40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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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6  1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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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사천=고해린 기자]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 가을빛으로 물든 나무들이 산길을 따라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난 21일, 추억의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가족 이야기를 들려줄 25번째 주인공 정민진(30) 씨를 만나기 위해, 그가 운영하고 있는 ‘천상의 프랄린(동그라미)’ 카페를 찾았다. 다솔사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카페 내부는 구석구석 식물과 책들로 자연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정 씨는 사천에서 카페와 요가원을 운영하고 있다.

   
▲ 서랍 속 인터뷰 스물다섯 번째 주인공 정민진 씨.

 “두 개를 보관하고 있는데 하나는 4~5살 때 했던 유치원 재롱잔치 비디오, 또 하나는 오빠 웅변대회 때 제가 나가서 발표를 하는 비디오에요. 요새는 비디오테이프가 없는데, 딱 저희 어릴 때까지가 비디오테이프를 보던 때인 것 같아요.”

지금은 쉽게 보기 힘든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가 살아온 시간들을 들여다봤다. 요가를 한 지 올해로 8년 차라는 정 씨. 요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걸까?

“어릴 때부터 본질적인 고민이 많았어요. 왜 살아야 되는지, 내가 왜 태어났는지. 그게 풀리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죠. 그런 고민을 한창 하던 무렵에, 누가 요가를 하면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고난도 동작도 많고 힘들어서 ‘나랑 안 맞구나’라고 생각하다가, 저와 맞는 선생님을 만나고 요가에 완전히 빠졌죠.”

서포에서 나고 자란 소녀는 중학교 때부터 생각이 깊었다.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고민들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졌다. 불교를 믿었던 집안의 영향일까, 자유로운 정 씨의 영혼은 틀에 박힌 학교생활과는 맞지 않았다고.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생각하는 게 너무 다르니까, 소통이 안 되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제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죠. 그러면서 점점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된 거죠. 그때의 저에게는 책과 세상이 친구였어요.”

정 씨는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고,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연극을 시작하게 됐다. 중학교 때부터 매주 서울에 가서 연극을 배우고, 극단 생활을 했다. 밤새는 일은 일상이고, 밥을 먹을 때도 대본을 보고, 연습을 했단다. 정 씨의 말에 따르면 그때는 그녀의 온 세계가 연극으로 굴러갔다고. 그런데 왜 연극을 계속하지 않았던 걸까.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고 딱 한 달 뒤에 연극을 그만뒀어요. 무대 위에서 느끼는 희열, 울고 웃는 순간들과 반대로 무대 아래에서 느껴지는 상실감, 공허함이 컸죠. 학교에서는 이론 위주로 배우고, 어느 순간 이게 내 길이 아니라고 느꼈죠.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하고 싶은 만큼 해보고 그만둔 거라 후회는 없어요.”

대학을 그만둔 뒤로 정 씨는 플로리스트, 바리스타, 아로마테라피스트, NLP(Neuro Linguistic Programing, 신경언어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자격증을 땄다. 24살 때부터는 2년 동안 지리산 청학동에서 요가와 심리 상담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단다. 그녀가 지금 가르치는 요가는 나이가 많고, 아픈 사람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회복요가’다. 정통요가부터 시작해 지금은 국제 요가지도자 과정 중 가장 권위 있는 요가 얼라이언스 지도자 자격(RYT)을 갖고 있다.

부처님처럼 차분하고 인자해 보이는 정 씨였지만, 사람이라면 화가 나는 순간도 있을 텐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까?

“지금도 매주 수요일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요. 동해를 자주 가는데, 여기서 직접 운전해서 국도를 타고 가면 여덟 시간이 걸려요. 가서 온종일 바다만 바라봐요. 그렇게 하염없이 바다를 보면서 명상을 하고, 생각을 계속 비우는 거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정리하면서 복잡한 모든 것들을 흘려보내요. 직업상 내가 채우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줄 수 없으니까 꼭 필요한 시간이죠.”

이쯤 되면, 그녀의 선택에 대해서 가족들은 뭐라고 했을지 궁금해지는데. 

“저희 집은 다섯 가족인데, 부모님하고 오빠, 저, 남동생 이렇게 삼남매에요. 저희 어머니 18번이 ‘그럴 수도 있지’고 아버지는 ‘괜찮다’에요. 자랄 때 부모님이 크게 혼내신 적이 없으세요. 대신에 어릴 때부터 ‘우리가 부모지만 너의 삶의 주인공은 너다’라고 항상 말씀하셨죠. 제가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도 항상 믿고 응원해주셨어요.”

가훈부터 ‘남을 먼저 생각하자’라서 일까, 정 씨는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해 주는데 관심이 많다고. 요가원 이름인 ‘달빛요가’도 어둠 속에서 모든 세상을 비추는 달과 같이 사람들에게 따스하게 스며들고 싶은 마음에 지은 이름이란다.

앞으로 정 씨의 목표는 두 가지다. 소방관처럼 직업적인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이들을 돕는 것과, 마을에 ‘치유요가센터’를 짓는 것이다. 고독사로 외롭게 죽어가는 이들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찾아와 자연 속에서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단다.

마지막으로 정 씨가 어릴 때부터 본질적인 고민을 하며 얻은 깨달음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모든 마음의 문제들이 결국엔 다 ‘나’로부터 시작된 것들이었어요. 또, 여러 고민들을 하면서 느낀 건, 삶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것’이라는 거였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끊임없는 성장을 하고 있는 그녀의 미소에서 따뜻한 달빛의 온기가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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