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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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사천 바다에 깃든 사람들 ‘다시 바다로’[기획] 사천만 해저 리포트 ①
하병주 기자  |  into@news40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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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5  15: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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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바다의 상징 한려해상국립공원. 그 한가운데 있는 것이 삼천포와 사천만이다. 그 청정의 이미지는 오늘날 심각하게 위협 받고 있다. 육지와 섬에 둘러싸여 온갖 문명의 찌꺼기를 받아냄은 물론, 여름철이면 팔자에 없는 ‘남강물폭탄’을 뒤집어쓰곤 하는 탓이다. 그럼에도 사천 바다는 어질고 모질어서, 뭇 생명을 품고 기르는 일을 쉬지 않는다. 그 생명을 끝내 인간에게 다시 내어주기까지 한다. 사천 바다의 이 베풂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영원할까? 아니면 한계에 이른 걸까? ‘사천만 해저 리포트’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본다. / 편집자                                           

   
▲ 사천 바다에 깃들어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는 최소 수만 년이다. 우리는 다시 수만 년 뒤 세대들에게 온전한 사천의 바다를 넘겨줄 수 있을까? ‘사천만 해저 리포트’는 이 물음에 답하는 출발점이다.

수만 년 얽힌 사천 바다와 사람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사천시 바다 면적은 얼마일까? 기초지자체 간 바다의 경계가 명확하진 않으나 대략 바다 경계의 중간쯤을 기준 잡았을 경우 148.78㎦이다. 이는 1만4878헥타르에 해당한다. 사천시 산림면적이 2만3037헥타르, 농경지가 8735헥타르이니, 산림 면적보다는 적고 농경지보다는 넓은 셈이다.

단순히 잡고 채취하는 데서부터 기르고 가공하는 분야까지, 수산업의 영역이 넓고 다양함을 생각하면 사천시 경제의 중요한 한 축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텃밭은 바로 ‘사천의 바다’다.

사천 바다는 크게 삼천포 앞바다와 사천만 내만으로 나눌 수 있다. 삼천포 앞바다는 물이 맑고 물살이 빠른 특징이 있다. 사천만 내만은 갯벌이 발달해 있으며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 내만보다야 삼천포 앞바다가 더 깊겠지만 둘 다 깊은 바다 축에는 들지 않는다. 각종 수산자원의 산란장 또는 치어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특징 때문인지 사천의 바다는 아주 오랜 세월 이전부터 인간의 삶과 맥이 닿아 있었다. 지금의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가 들어앉은 곳은 3000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자리다. 뿐만 아니라 수만 년 전 구석기시대에도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니, 과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바다를 터전으로 삶을 영위했을지 모를 일이다.

시간을 2000년 전쯤으로만 돌린다 해도 사천의 바다는 사람들로 매우 붐볐다. 이는 늑도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도로 건설을 위해 섬의 일부만을 발굴했음에도 ‘고대 국제무역항’이란 별칭을 얻을 만큼 많은 집터와 유물들이 쏟아졌다. 특히 전복따개, 작살, 낚시바늘 등 어로활동 도구와 대규모 조개무덤은 그 시절 사람들이 바다에 가까이 기대어 살았음을 말해준다.

다시 시계바늘을 100년 전으로만 돌려보자. 당시 일제는 자원 수탈 목적으로 삼천포항을 개발했다. 발달한 어선과 어로장비를 들여왔고, 그들의 집단 주거지도 만들었다. 세관까지 두고 남해안 일대의 수많은 수산자원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그땐 삼천포항이 일제의 어업전진기지였던 셈이다. 그 흔적의 일부는 NH농협은행 삼천포지점의 전신인 ‘삼천포금융조합 저축예금원장’(=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 보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의도는 불손했으나 일제 영향으로 삼천포항은 크게 성장했다. 이는 일제가 물러난 뒤에도 이어졌다. 발달한 어업기술의 발달이 도움이 됐다. 삼천포읍은 곧 삼천포시로 격상했다. 특히 70년대와 80년대엔 수산업 가공기술이 발달했다. 그 유명한 ‘삼천포 쥐포’가 제일 잘 나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쥐치어가 잘 나지 않아 그 시절 유명세를 많이 잃었지만, 수산가공분야 만큼은 경남에서 여전히 으뜸이다.

   
▲ 사천의 바다, 그 속살은 어떤 모습일까.

바다 속살을 들여다보는 이유
비슷한 시기에 사천의 바다는 큰 시련을 맞는다. 어민들의 어자원 싹쓸이, 각종 오염원 증가, 해수온도 상승에 따른 환경변화 등이 국내 여느 바다가 겪는 도전과 위협이라면, 사천의 바다는 여기에 두 가지를 더한 격이었다.

첫째는 남강댐 건설과 그에 따른 민물의 사천만 인공방류다. 1969년 남강댐 준공 이래 여름 홍수철만 되면 사천만으로 남강물을 쏟아냈다. 이는 가까이는 사천만, 멀리는 남해와 하동에 이르기까지 바닷물의 담수화를 가져왔고, 어자원에 큰 위해를 가했다. 특히 민물을 피해 멀리 달아날 수 없는 조개류나 해저 수산자원에 치명타를 가했다.

둘째는 삼천포화력발전소 건설이다. 이 발전소는 1970년대부터 공사에 들어가 1990년대까지 단계적으로 완성됐다. 문제는 발전소가 잘피를 비롯한 각종 해조류와 어자원 서식지를 없애면서 들어섰다는 점이다. 석탄을 태우고 남은 재를 처리하는 회처리장도 바다를 메운 곳에 들어서긴 마찬가지다. 또한 발전기를 식히고 빠져나오는 따뜻한 바닷물도 주변 생태계에 적잖은 영향을 꾸준히 주고 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다고 하나, 석탄 하역 과정에서 바다로 일부 흘러드는 석탄도 한때 골칫거리였다.

이런 도전과 위협에 맞서 사천시를 중심으로 수산자원 보호 활동에 나선 것은 그나마 위안이다. 바다목장사업으로 불리는 인공어초와 인공해초 설치가 대표적이다. 각종 조개류의 종패를 뿌리고 어린 물고기를 풀어주는 일도 해왔다. 덕분에 어자원이 조금은 되살아났다는 어민들 얘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사천의 바다는 여전히 몸살을 앓는다. 육지에서 떠내려온 온갖 쓰레기, 어민과 낚시객들이 버리는 각종 어구들이 범벅이 되어 바닷가나 바다 밑에 쌓이고 있다. 이들은 바다 속 생명들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해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천 바다에 다시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다. 특히 평소엔 미처 볼 수 없는 바다 밑바닥 그 속살까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에서 애정 어린 관심이 싹트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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