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박막례·김유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

“서른 언저리에 서니 어떤 예감이 몰려온다. 더 이상 내 인생에 반전 같은 건 없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 대개 ‘기회’란 20대에게나 주어지는 카드 같아서.” - 손녀 김유라의 말이다.

“염병하네. 70대까지 버텨보길 잘했다.” - 손녀의 말에 대한 박막례 할머니의 코멘트다.

짧게 주고받은 이 대화에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라는 책 한 권이 그대로 압축되어 있다. 천재 PD 손녀의 기획력과 유머가 가득한 할머니의 조합, 그리고 타인의 삶에 대한 김유라의 속 깊은 이해가 드러나고, 박막례의 모질었던 세상에 대한 쿨함과 용기도 엿보인다.

2년 전쯤 입소문 난 유튜브 채널에서 ‘계모임 갈 때 메이크업’, ‘치과 갈 때 메이크업’ 등을 시연하던 낯선 할머니. “볼터치는 너무 빨갛다~ 할 때 한 번 더 바르는 거여”, “얼굴이 적어질라믄, 다시 태어나야 돼” 같은 반전 퍼포먼스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했던 박막례였다. 그녀는 이제 독보적인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성장했고, 유튜브 CEO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오고 구글 본사 행사에 구글 CEO가 한국 대표로 초청할 정도로 글로벌한 셀럽이 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더 늦기 전에 할머니에게 넓고 멋진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둘만의 여행을 떠난 김유라 PD의 결단으로부터 시작됐다. 70평생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자식들에 치여 허리가 굽어라 일만 해온 할머니가 치매 위험 진단을 받게 되자, 손녀는 할머니의 모질었던 삶이 이대로 마무리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여행 중 가족과 공유하기 위해 찍었던 영상과 재미로 만든 할머니의 뷰티 영상이 대박이 났고,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 직장을 그만둔 손녀에게 직업이 생긴다는 이유로 이 둘은 본격 유튜버가 됐다고 한다.

그러한 그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화통하고 유머러스한 할머니와 감각 넘치는 손녀의 이야기가 원래의 말맛을 살린 채 주거니 받거니 담겨져 있다. 한편, 매력 있는 화제성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광고나 매체에 이들의 모습이 아주 흔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할머니의 행복’이라는 김유라 PD의 한결같은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건강과 행복한 일상을 해치는 어떤 제안도 사려 깊게 판단하여 거절한다고 한다.

“희망을 버리면 절대 안돼요. 희망을 버렸으면 다시 주서 담으세요. 그러믄 돼요. (중략) 인생은 끝까지 모르는 거야.” - 너무도 흔한 말이어서 사실 와닿기 힘든 말이다. 하지만 고달픈 삶에서 많은 것을 겪어낸 후의 처연함을 지닌 박막례 할머니를 통해 전해질 때는 울림이 다르다. 더구나 지금 현재 뚜렷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깔깔 웃는 동안, 남은 생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품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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