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흔아홉의 택시드라이버 -

▲ 行. 아버지의 길. 30×25. 2019.

“아빠가 지금 데리러 가고 있으니, 옷 두껍게 입고 집 앞에서 기다리세요.”

내려앉는 눈꺼풀에 힘을 줘가며 삼남매는 아버지의 아주 늦은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가는 시각. 아버지는 녹초가 된 몸으로 발 뻗을 자리부터 보였을 텐데 우리를 다시 태우고는 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 향했다. 터미널 근처 리어카에서 파는 뜨끈한 콩국을 한 그릇씩 받아 든 우리 삼남매의 고사리 손이, 봄이지만 여전히 싸늘한 밤공기에 맞닿아 있었다. 찹쌀떡을 잘라 띄워주는 콩국의 달고 구수한 김과 후후 불어대는 입김이 서로 섞여 이젠 추억이 되어 버린 시절이 있었다.

일흔아홉의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진주 시내를 구석구석 누비신다. 이일 저일 벌리시다가 개인택시를 하신 이후로 자식들 공부를 제대로 시킬 수 있으셨다며 아버지 인생의 최고 전환기라 여기셨다. 새벽에 들어오시고 새벽에 나가셨던 고된 아버지를 기억하면, 간혹 작업하다 새벽공기 운운하는 내 모습에서 아버지의 새벽공기를 느끼게 된다. 그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였다.

진주에 들어서면 한 번씩 어느 택시 승강장 줄에서 아버지를 발견한다. 젊은 기사들과 뭐가 그리 좋으신지 입담 중이시다. 얼른 빵 빵~빵 빵 눌러댄다. 창문을 열어서는 “아빠~아빠~아빠야~” 안 들리시나 보다. “아부지~아부지~아부지야~” 그래도 안 들린다. “이런! 윤병섭~윤병섭~윤병섭씨~” 어림도 없다. 애잔한 반가움에 목이 터져라 불러 보아도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 딸의 외침은 그저 도시 소음에 섞여 버렸다.
 
차를 몰아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면 내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고 오셨을 길이라 그 길이 마음 아프다. 진주의 길 어디를 가든 나에게는 아버지의 길이었다. 이곳은 자전거 탄 애들이 많이 다녀 좀 위험 할 텐데.......이 곳에서 신호를 받고 계시면 조금 지루하시겠다....... 아버지도 이 거리에서 저 나무가 눈에 들어오셨을까....... 여고 앞을 지나면 유난스러웠던 둘째딸의 사춘기를 아버지는 회상하시겠지.......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의 흔적을 집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길에서 찾게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지나다니는 길. 아버지가 보았을 풍경. 아버지가 듣는 소음. 아버지가 느꼈을 봄. 봄. 봄.
 
그런 아버지를 그대로 빼다 박은 나는 작업하다 자정이 넘어 집으로 들어가면서 가끔 핸드폰을 누른다. “통우동 먹자, 나오시라” 부자(父子)는 한밤중에 홀린 듯이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투덜대며 나온다. “너거 엄마가 미쳤는갑다. 허구헌 날 자다 말고 이게 뭔 짓이고!”

두 남자는 내가 왜 이러는지 아직도 모를 일이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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