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백나무.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았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설렘 반, 두려움 반이다. 더도 말고 꼭 이루고 싶은 일 한 가지를 정하여 실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숲친구’와 함께 섬으로 ‘숲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정했다. 아직 섬은 사람들의 발길이 덜 스친 곳이라 자연 그대로다.
        
겨울 한가운데 있으면서, 벌써 봄을 기다리는 성질 급한 사람들이 있다. 감색빛 산과 들, 미세먼지 더해진 회색빛 계절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일게다. 나도 그렇다. 일찍 꽃망울 맺는 야생화라도 만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산책삼아 간 수양공원에서 붉은색 꽃을 가득 피우고 있는 동백(冬柏)나무를 만났다. 노란 수술을 가득 품은 붉디붉은 동백꽃을. “그래, 동백꽃이 있었지.”라고 내뱉고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동백꽃 정도는 모르는 이 없고, 겨울에 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직접 보지 않고서는 그 존재와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게 또 우리다. 

동백나무는 늘푸른잎을 달고 있는 키 작은 나무이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활동을 멈추고 겨울 채비에 들어가는 늦가을에 오히려 동백나무는 조금씩 꽃망울을 만들기 시작한다. 찬바람이 거세지는 11월 말이면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이듬해 3월 혹은 4월까지 꽃을 피운다. 동백나무의 열매를 동백이라고도 부른다. 8월이면 작은 사과모양의 열매가 달리고, 10월이면 익은 열매가 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동그란 모양의 까만 씨앗이 드러난다. 이 씨앗을 짠 기름이 동백기름이다. 맑은 노란색을 띤 동백기름은 변하지도 않고 굳지도 않고 날아가지도 않는다. 식용으로도 쓰이고, 잘 마르지 않아 아주 정밀한 기계에 칠하는 기름으로, 전기가 없던 시절 호롱불을 켜는 데 쓰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동백기름은 양반가 여인들의 머릿기름으로 그 명성이 높다.   
  
동백나무는 동양의 꽃이지만 서양에 건너가서도 사랑받는 꽃이었다. 특히 정열의 붉은색 꽃 때문에 많은 노래와 시, 소설의 소재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소설가 뒤마의 <동백꽃 부인>이 있다. 뒤마의 <동백꽃 부인>을 각색하여 만든 오페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일본 사람들이 <춘희>라고 부르는 탓에 우리에게도 <춘희>로 알려졌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 비올레타는 한 달 가운데 25일은 흰 동백을, 5일은 붉은 동백을 들고 사교계에 나오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동백나무는 꽃이 지는 모습으로 특별히 소개되는 나무이다. 꽃잎을 하나씩 떨어뜨리는 다른 나무와 달리 동백나무는 꽃잎 하나 상하지 않은 채 큰 꽃송이를 통째로 떨어뜨린다. 뚝뚝 떨어진 꽃송이가 땅에 수북히 쌓인 것을 보면 왠지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서 일까? 우리의 아픈 역사인 4.3제주를 말할 때 동백꽃을 함께 이야기한다. 붉은 꽃송이가 흰 눈 위에 떨어지는 모습이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간 4.3희생자와 닮았기 때문이다.

동백나무가 한겨울에도 꽃을 피울 수 있는 이유는 꽃가루받이를 돕는 ‘동백새’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누군가의 동박새로 살아보는 2019년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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