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개혁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한 쪽은 뜨겁지만, 다른 쪽은 현실의 이익에 무게를 두면서 미래의 상황 변화 가능성을 두고 차갑게 주판을 튕기는가보다.
필자는 대한민국 자본주의가 어디로 갈 것인지,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본 적이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던가. 다당제를 기반으로 민주와 복지가 확대된 유럽식 자본주의냐, 보수 양당제를 기반으로 국가는 부강하나 국민은 가난한 미국・일본식 자본주의냐 하는 선택의 문제라고 단순히 보는 편이다.

혹자는 ‘헬 조선’이라며 한국의 새로운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 앞에 의료・보육 등의 복지제도, 국민의 소비문화 등에서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이 누리고 ‘떼법’까지 쓰면서 잘 살고 있으니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 논리라면 역으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미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된다. 한국보다 못한 나라를 한국의 미래로 상정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 유시민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더 확대된 민주주의와 복지제도가 안착된 유럽 복지국가에는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 길로 가는 방법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①사민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의 오랜 집권의 역사, ②그것이 가능한 선거제도 즉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채택, ③90%에 달하는 높은 노조 조직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오랜 장기집권과 그 이후 더욱 공고화된 보수적 양당 체제, 지역주의에 편승한 소선거구제 아래 단 1표를 더 얻은 1인만이 국민의 대표가 되는 선거제도를 지녔다. 노조 조직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런 노조조차 곱지 않게 바라보는 문화다.

한국의 경제는 과거와 양상과 정도는 다르지만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에도 불구하고 양극화의 간격이 더 벌어지고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다. 경제성장이 더 가속화되면 해결되는 문제인가. 설령 그렇다 해도, 오늘날 경제가 70·80년대 굴뚝산업을 기반으로 한 고도성장이 재현되는 시대인가.

정치구도를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정치개혁은 선거제도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재집권보다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대연정까지 제안했었다. 선거철만 되면 당선이 유력한 정당을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철새정치인’ 없이 각자의 정치성향과 소신에 따라 국민을 대변하고, 지역주의와 기득권에 편승하지 않고 소수의 목소리도 국정에 반영되는 정치가 필요하다.

거대 양당이 번갈아가면서 정치권력을 나누어 가짐에 따라 오직 현 정권의 실패가 다음 선거에서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손쉬운 방법이 되는 후진적 정치구조를 탈피하는 유일한 제도는, 의석수를 정당의 지지율과 연동시키는 선거제도의 개혁뿐이다.

선거제도의 개혁으로 정치가 바뀌면 사회, 문화, 국민의식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제도가 국민의 의식을 규정한다. 2005년경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될 즈음에 국민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 북유럽 국가 노동자들이 자전거로 공장에 출근하던 100년 전에 이미 실시된 주 5일 근무제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며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제도의 힘이다. 선거제도 개혁, 지금이 아니라면 미래에는 더욱 힘들 일이다. 미래의 대한민국이 작은 땅덩어리의  미국과 일본이 되어선 절대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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