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촌동 정대우(78)씨 ‘배고개의 슬픈 매화’ 발간
야산대와 경찰특공대 상황 다룬 민간 보고서 의미
유년시절 경험과 16명 증언을 11개 에피소드로 엮어

정대우 씨가 한국전쟁 당시 사천시 동지역(삼천포)의 여러 혼돈 상황을 엮은 민간보고서 형식의 책을 발간했다.

경남농업기술원장을 지낸 정대우(향촌동 배고개길·78)씨가 한국전쟁 당시 사천시 동지역(삼천포)의 여러 혼돈 상황을 엮은 민간보고서 형식의 책을 발간해 눈길을 끈다. 정 씨는 ‘10세 소년이 겪은 혼돈의 6ㆍ25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인 『배고개의 슬픈 매화』(도서출판 화인, 219쪽)를 발간했다.

이 책에는 한국전쟁 당시 경찰특공대원, 야산대원이었다가 전향한 경찰특공대원을 비롯해 전직 공무원, 교장, 시장, 의회의장 등 16명의 증언이 실려 있다. 한국전쟁 당시10살 국민학생 소년이었던 필자의 기억과 다양한 위치와 입장에 있었던 이들의 증언을 종합해 수필과 소설, 희곡 등 다양한 형식으로 서술해 글의 긴장감을 높였다.

이 책에는 인민군들이 필자의 집에 쳐들어와 보름 동안 묵은 이야기, 배고개부락 뒷산인 와룡산에 진을 치고 있는 야산대(와룡산 빨치산), 마을 처녀와 인민군 사이의 슬픈 사랑 이야기 등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정 씨는 억울하게 야산대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 큰아버지, 결혼 선물로 갖고 있던 금반지를 인민군에게 건네줌으로써 자식들을 지켜낸 어머니 등 필자의 가족사 등도 생생하게 그려냈다.

한국전쟁 당시 필자의 집마당에 있던 200년 넘은 매화나무가 밑둥과 큰줄기만 남기고 잘려나갔던 장면도 그렸다. 어린 필자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던 것.

그동안 지리산빨치산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한 기록과 영화 등으로 소개됐으나, 와룡산 빨치산(야산대)과 토벌대(경찰특공대) 등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전쟁 당시 와룡산을 중심으로 용현면부터 삼천포지역까지 야산대가 활동했다. 당시 야산대와 토벌대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가치 중 하나다.

정 씨는 경찰특공대원이었던 박두실 씨 등으로부터 사진 자료를 수집했고, 지역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옮겨 적었다. 아쉽게도 육성녹음 파일 등은 갖추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구체적인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돌아가신 상황이어서 추가적인 작업은 힘든 상황. 필자는 더 늦기 전에 배고개마을과 삼천포 지역의 기록을 책으로 엮어야겠다고 판단해, 올해초부터 집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 씨가 한국전쟁 당시 베어진 매화나무 옆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정 씨는 “내가 자란 삼천포라는 작은 시골에서 일어났던 가슴 아픈 일들이기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그대로 묻힐까 걱정되었다”며 “우리 모두는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되 과거를 잊지 않고 국론을 통일하고 화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6ㆍ25와 같은 대재앙이 이 나라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남기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지역에서도 비슷한 참화와 갈등이 있었다. 형제가, 이웃이, 선후배가 갈라져 원수가 됐던 시절이었다. 500권을 인쇄해 지인과 지역의 젊은이들에게 나눠졌다. 지역의 작은 기록이지만 과거와 오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장주 전 삼천포고등학교장은 추천사에서“혼돈의 시대에 일어났던 비극들을 찾아내어 기록한 내용들은 그 자체가 우리 민족의 슬픈 과거요, 내 고장의 역사요, 내 가족들의 비애라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젊은 세대들은 지나온 세대가 경험한 불행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나라를 걱정하고 서로 용서하며 관용의 미덕이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추천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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