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별 것 아니지만 아주 가끔씩 신경을 툭툭 치다 끝내는 심장 깊숙이 박힌 가시를 건드리는 단어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족’이란 단어도 그러하다. 사실 ‘가족’이란 말처럼 진부하며 또 모호한 단어가 있을까. ‘가족’을 국어사전에서 살펴보면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정의하는데 이 또한 모호하다. 구체적인 실체가 있는 일종의 집단을 뜻하는 단어이므로 명쾌해야함에도 그렇다.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사람들이 이루는 관계가 워낙 복잡 다양해지기도 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조금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가족이란 단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각자의 시간과 그 속에 존재하는 경험 때문이 아닐까. 좋은 감정일 수도 있고 애증의 기억일 수도 있고 또 어느 누구에게는 씻을 수 없는 증오이기도 할 터. 그래서 가족을 소재로 한 서사는 거의 무궁무진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역사 이래 많은 예술적 결과물로 탄생했다. <당신의 부탁>도 그 진부한 가족에 관한, 그 중에서도 엄마라는 구성원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죽은 남편의 아들을 맡아야하는 주인공 효진(임수정)과 열여섯 살 아들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잘 짜인 영화적 구조 속에 녹아든다.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그러질 못하고, 아이를 가졌지만 키우질 못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가슴으로 낳아서 키운다. 과연 엄마는 어떤 존재인 걸까. 전작 <환절기>에서 보여줬던 이동은 감독의 가능성은 이 영화를 통해 장기로 발돋움 한다. 관계를 들여다보는 그만의 시선은 신선함보다는 작가적 개성으로 자리 잡을 모양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임수정의 연기는 여전히 담담하며 깔끔하다. 그녀의 얼굴처럼 자연스러워서 감독의 화법도 맞춤옷처럼 잘 맞아떨어진다. 아들 역할의 윤찬영도 계속 보고 싶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자기만의 감성을 풀어내는 재주가 돋보이는데, 배우란 나이를 떠나 오롯한 감성으로 영화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임을 생각하게 한다.

머지않아 5월이 오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족이란 단어에 노출될 터인데, 올해 5월은 조금 더 유연하게 가족이란 단어와 가족이란 실체를 만났으면 좋겠다. 이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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