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봄의 마지막 절기라는 곡우(穀雨)를 막 지나고 이제 여름의 시작이라는 입하(立夏)를 앞두고 있으니, 언뜻 보면 한창인 것 같아도 옛 선인들의 시각으로는 어느새 봄도 막바지에 걸린 것이다. 계절과 관련한 인간사를 헤아리면 해마다 돌아오는 아름다운 봄이건만 그 해마다를 놓치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신 분들도 있을 터이고 노쇠하여 봄이 슬프게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듯하다. 마냥 흥청일 것만도 아닌 것이 이 봄날을 보내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이런 봄날을 노래한 시의 한 절창으로 ‘년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이라는 구절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해마다 해마다 꽃은 서로 같건마는 해마다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네.’로 옮길 수 있는 이 말은 「고문진보(古文眞寶)」라는 책에는 당나라 송지문(宋之問)이 썼다는 ‘유소사(有所思)’의 한 구절로 소개되어 있다. 가버린 청춘을 생각하며 백발을 서러워하는 마음을 이보다 더 절절히 그려낸 시구가 있을까.

그리고 이 시의 해설 격인 글에서는 이 구절은 원래 송지문의 사위가 되는 유희이(劉希夷)의 작(作) ‘대비백두옹(大悲白頭翁)’의 한 부분이었는데 송지문이 이 구절이 욕심나 유희이에게 달라고 하였으나 거절하므로 하인을 시켜 죽이고 빼앗았다고 한 일화가 소개되어 흥미를 더한다. 시 한 구절이 욕심나 참말 사위를 죽이는 일이 벌어졌을까마는 그만큼 이 구절이 절창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이 구절은 또 안중근 의사께서 여순감옥에 수감되어 계실 때 써서 남긴 서예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안 의사 같으신 분이 가는 봄을 안타까워하셔서 감상(感傷)에 젖으셨을 리는 없겠으나 내년의 봄을 기약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신 일로 읽을 수 있겠고, 해마다 바뀌는 세상의 인심(人心)을 통탄하신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다.

봄과 꽃을 노래한 우리 현대시로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落花)’를 꼽을 수 있겠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하는 이 시는 봄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즐기는 낭만 뒤에 오는, 꽃이 지는 것의 아쉬움과 동시에 그 꽃을 이어 맺는 열매에 주목한다. 말하자면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 것이니 꽃이 진다는 이별의 안타까움을 사랑과 그 성숙의 열매라는 더 큰 결실로 거두어들이는 것이 인간사의 바른 일이라는 것이다. 어지럽게 날리는 지는 꽃잎이라는 뜻의 ‘분분한 낙화’라는 구절과 낙화 뒤의 열매라는 뜻의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새삼 눈이 간다.

그 ‘분분한 낙화’처럼 온갖 감언이설로 치장된 말이 온통 흩날리는 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그 말의 어떤 것이 장차 다가올 가을에 보람 찬 열매를 맺을 것인가. 눈을 부릅뜨고 지는 봄과 함께 마음을 다잡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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