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경상대 생명과학부 교수

새벽녘에 잠이 깨어 창밖을 내다보니, 과연 일기예보대로 눈이 날리고 있다. 물론 눈이 전혀 안 온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눈이 사천에 내리는 것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그것도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에 눈이 내리는 것은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우리 고장 사천은 꽃 소식이 빨리 오는 곳이다. 이미 매화가 피었고, 목련도 피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느닷없는 눈으로 다 질 것 같다. 심술궂은 눈 때문에 꽃을 피우려고 애쓰는 식물들이 안쓰럽고, 그것을 즐길 시간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눈을 맞으며 나선 산책길에서 머릿속에 ‘매화사’라는 시조 한수가 떠올랐다. 언제 그 시조를 배웠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겠지만, 수십 년 전 학교에서 배워 외웠던 것이리라.

매화 옛 등걸에 춘절이 돌아오니 / 옛 피던 가지에 피엄즉도 하다마는 / 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혹자의 따르면 평양기생 매화가 춘설이라는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고는 탄식하며 읊은 시라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다고 믿기에는 절절히 숨어 있는 그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이 시조가 생각난 것이 어찌 춘분에 내리는 눈 때문이랴. 지난 몇 년간 겪고 지냈던 일들이 난분분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화여대 학생들이 교내 문제로 시작한 시위에서 마치 굴비 엮듯이 얽히고설킨 비리가 많은 국민들을 경악케 했고, 끝내는 촛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정권이 교체되고, 올림픽을 치르고 사람들이 하나 둘 희망을 얘기하기 시작하였지만, 춘설은 아직도 난분분하다.

뉴스를 통해서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전직 대통령 비리에 대한 조사와 미투 운동에서 얻은 충격, 그로인해 벌어지는 진실게임 등 너무나 많은 춘설이 흩날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뿐 만이랴. 이제 채 석 달도 남지 않은 지방 선거로 바람에 날리는 춘설이 어지럽다. 지방 선거에 맞추자던 개헌 공방도 어떻게 진행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시인 정지용은 ‘춘설’을 향기롭다고 노래했다.

문 열자 선뜻! / 먼 산이 이마에 차라 / 우수절(雨水節) 들어 / 바로 초하로 아츰, / 새삼스레 눈이 덮힌 뫼뿌리와 / 서늘옵고 빛난 / 이마받이 하다. / 어름 글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 흰 옷고롬 절로 /향긔롭어라. (중략)

눈은 비로 변하고, 이제 이 비가 그치면 분명 봄이 올 터이다. 기분 좋은 봄바람과 함께 새잎이 나고, 꽃이 만발하게 될 것이다. 벚꽃의 눈이 트이면 온 천지를 화사하게 단장시킬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우리 고장에도 난분분한 춘설은 이제 없어지고, 햇볕이 따사롭고 꽃향기 만발한 진정한 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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