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팔경八景을 일러, 어떤 지역에서 가장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덟 군데의 경치라고 합니다. 과거 명소를 말할 때 비단 8경뿐 아니라 12경, 10경, 9경, 6경, 4경, 3경 등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절경을 얘기할 때 전국 대부분이 그 중 8경을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사연이 무엇인지 유래를 알아보겠습니다.

국어사전에는 팔각정八角亭, 팔고八苦, 팔곡八穀, 팔관회八關會, 팔도八道, 팔등신八等身, 팔선녀八仙女, 팔자八字 등 팔이라는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가 무수히 많습니다. 단순한 산술 개념으로 보더라도 숫자 팔은 열을 넘지 않습니다. 비록 열에는 못 미치지만 그다지 많이 부족하다고 여길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넘치지도 않고 크게 모자라지도 않는 여유 있는 삶을 우리 민족은 즐겼습니다. 넘치면 이웃과 나누면 되고 모자라면 채우면 좋지만 안 채워도 별 문제 될 게 없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숫자 팔에 대한 신축성 있는 풀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과 친숙하며 밀접한 연관을 맺었던 것입니다. 우리 고유의 옷을 보면 쉬이 짐작할 수 있겠지요. 딱 맞는 옷은 없습니다. 조금 크면 한두 번 접어 입고 많이 크면 서너 번 이상 접어서 입으면 그만입니다.

유교 경전인 주역周易(역경易經)은 상경上經, 하경下經,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십익에는 단전彖傳, 상전象傳, 계사전繫辭傳 각 상하上下 그리고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 등 열 편의 글이 담겨 있지요. 이 중 계사상전을 보면 천칠지팔天七地八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늘은 칠이요, 땅은 팔이라 했습니다. 땅을 팔이라 한 것은 우주의 현상과 자연의 섭리를 함유한 자연의 속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복희씨伏羲氏는 팔괘八卦를 만들었는데, 이는 하늘 같은 어떤 것을 비롯해 땅, 불, 물, 바람, 우레, 연못, 산 같은 어떤 것을 가리켰습니다. 이 안에는 사람의 운명이 들어 있어 곧 사람이 태어난 해年, 달月, 날日, 때時를 간지干支로 나타내면 여덟 글자가 되었던 것이지요. 중국 송나라 때 이성李成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처음 그렸는데, 자연 중심의 빼어난 풍경을 팔괘에서 본떠 팔경이라 이름했다 하여 이를 유래의 시초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명종 때 이광필이 소상팔경 그림을 그렸고, 이인로, 이규보, 이제현 등의 문인이 이에 관한 시를 지었는데, 이것이 우리 8경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우리나라 팔경으로는 송강 정철이 지은 가사 ‘관동별곡關東別曲’에 나오는 관동팔경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데,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것을 모두 모으면 무려 예순 곳이 넘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팔경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
 
사천시민들에겐 다소 식상한 면이 있겠지만 우리 고장에도 멋있는 사천 팔경이 있으니 잠시 둘러보겠습니다. 사천과 남해를 잇는 4월 유채꽃과 쪽빛 물결이 아름다운 창선-삼천포대교, 신섬과 마도 앞 죽방렴에 드리운 붉은 혈의 실안 낙조, 모래실의 파수꾼 남일대 코끼리바위, 아픈 기억을 화려하게 잠재운 선진리성 벚꽃, 와룡산 기암괴석과 잘 어울리는 5월의 진분홍 철쭉, 오랜 역사 속에서도 문인의 향과 반야차향이 은은한 봉명산 다솔사, 백성을 위한 임금의 마음이 서린 사천읍성의 명월, 별주부전 얘기를 만날 수 있는 비토섬 갯벌이 바로 그 주연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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