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뮤지컬영화는 일단 쉽게 만날 수 없는 장르인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헐리웃 영화계라도 제작비 부담이 기존 영화보다 최소 10배가 넘는데 쉽게 덤빌 수가 있겠는가. 따라서 최소한의 형식이 블록버스터이며 특정 관객층이 아니라 연령층을 불문한 소구력을 가져야 한다. 즉, <트랜스포머 시리즈>만큼의 눈요깃거리를 제공하고 더불어 귀가 즐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쇼맨>은 신나는 음악과 몸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퍼포먼스를 제공했다는데 이견이 없겠다. <레미제라블>이나 <라라랜드>처럼 뮤지컬영화는 연말, 12월에야 개봉을 하고 있으니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쇼맨>은 19세기를 살았던 실존인물로서 좋게 말하면 쇼비즈니스계의 선구자의 역할을 했고 나쁘게는 불신의 상징이 되어버린 P.T. Barnum의 생애를 보여주는 전기 영화다. 일반적으로 혈액형별 성격테스트의 허구성을 이야기할 때 ‘바넘효과’를 들먹이는데, 그는 후대에 심리학 용어로 기억에 남았을 만큼 다이내믹한 삶을 살았다. 이런 걸 1시간 30여 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우겨넣다시피 압축을 했으니, 한 인간의 삶이 온존하게 담겨있으리라는 보장은 처음부터 틀려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정신을 잃게 만드는 현란한 춤과 노래의 향연에 마음껏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심을 잡아야 할 이성이 음악과 퍼포먼스의 급물살을 타고 저 멀리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걸 자각하면서도 ‘그래, 이게 바로 뮤지컬영화야’라고 자기암시를 하는 걸 느낄 정도로 말이다.

사실 뮤지컬의 본령은 이것이 맞다. 내용보다는 음악과 춤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뮤지컬영화는 무대라는 공간의 제약을 쉽게 벗을 수도 있고, 때로는 특정인물에게 주목해 한없이 파고들 수도 있을 만큼 표현의 한계가 없으니 그 여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달렸다. 이것을 <위대한 쇼맨>은 1년 전 <라라랜드> 만큼이나 훌륭한 뮤지컬 넘버와 휴잭맨이라는 배우의 박수를 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훌륭한 연기로 채웠다. <레미제라블>이라는 뮤지컬영화에서 실력을 선보였으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듯 혼신을 다한 연기에 다시 한 번 놀랄 뿐이다. 17년이라는 세월을 담았던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에서 은퇴한 후에 ‘바넘’이라는 희대의 쇼맨으로 되돌아온 그에게 그저 기립박수를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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