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가르치며]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하고 상대의 생각을 헤아리기 위해 소통의 수단으로 만든 것이 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인종과 지역, 시대에 따라 그 형태와 소리를 달리 하여 태어났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숱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급변하는 현실을 반영하듯 새로운 말이 자꾸 태어나며 더 이상 활용 가치가 없는 언어는 도태의 길로 접어듭니다. 언어 역시 생명력을 갖고 탄생-성장-사멸의 과정을 거친다는 뜻이지요.

탄생 배경이 생뚱맞은 사자성어四子成語를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사전을 보면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난다는 뜻으로 여러 번의 실패에도 굽히지 않고 분투함’을 이르는 말이라 풀이해 놓았습니다. 고사성어라 표현하지 않은 것은 관련 고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확인이 필요한, 이 말에 얽혀 떠도는 이야기 두 가지를 언급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옛날 전투에 패한 장수가 작은 굴에 몸을 숨겼는데, 굴 입구에 거미 한 마리가 줄을 쳤다. 장수는 그렇게 다 만든 거미줄을 일곱 번이나 걷었는데도 거미는 묵묵히 여덟 번째 거미줄을 쳤다. ‘이만하면 포기할 일이지’라며 거미의 우둔함을 탓하던 때에 적군이 굴 입구에 들이닥쳤다. 꼼짝 않고 몸을 엎드린 채 숨을 죽이고 있으니, 적군 병사가 굴 입구로 다가와 입구에 친 거미줄을 보고는 살피지 않아도 된다며 돌아갔다. 거미가 보여준 불굴의 정신에 목숨을 빚지고 큰 깨달음을 얻은 장수는 나중에 재기하여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것이 칠전팔기의 유래다.

두 번째, 일본의 소설가이자 문예평론가인 쓰보우치 쇼요가 1885년에 쓴 당세서생기질當世書生気質이란 저서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사전오기’란 직역을 하면 네 번 넘어지고 다섯 번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계속 도전한다는 의미이지요. 이 말은 현재 비인정 사자성어임에도 불구하고 인구에 널리 회자될 정도로 대중성과 호소력을 지녔습니다. 따라서 관련 내용을 헤아려 고사성어 반열에 넣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저는 제시하려고 합니다.
 
1977년 11월 27일 파나마에서는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초대챔피언 타이틀매치가 열렸습니다. 11전 11KO승으로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애칭을 가진 파나마 복싱 영웅 엑토르 카라스키야와 대한민국의 홍수환이 맞붙었습니다. 탐색전으로 밋밋했던 1회전과 달리 2회전에서는 두 선수가 적극적으로 주먹을 주고받으며 난타전 양상으로 흘렀습니다. 하지만 몇 대의 정타를 허용한 홍수환 선수는 무려 네 번이나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당시 선수가 싸울 의지만 있으면 계속해서 경기가 가능한 세계복싱협회의 프리넉다운제 규칙 때문에 그는 다시 3회전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홍수환은 작심한 듯 카라스키야를 거칠게 몰아 붙여 마침내 그를 쓰러뜨리고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극적 반전이 가져온 엄청난 역전 KO승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나온 말이 ‘사전오기’였지요.
     
급변하는 작금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40년 세월은 결코 짧지가 않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어느 국어 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은, 이역만리 타지에서 거둔 그 불굴의 정신이 담긴 ‘사전오기’는 우리 고유의 고사성어로서 사전에 오를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판단합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