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가을이 영글어 가는 길목에서 억새를 뒤흔드는 바람을 보며 삶의 진실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는 과연 얼마만큼 참되게 살아 왔는지, 진실이라고 믿은 게 거짓은 아니었는지, 상념에 젖게 합니다. 가끔 사실을 왜곡한 것이 오히려 긍정의 힘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못임을 알면서도 그 의미를 헤아려 가치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얻는다면 거짓이 지닌 힘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비근한 사례를 통해 오류가 일반화된 경우를 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였던 히포크라테스는 “Ars Lunga Vita Brevia”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풀이하면 ‘일 하나 똑바로 배우려면 평생 해도 모자란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영어로 ‘Life is short, art is long’이라 옮겨 놓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로 번역했습니다. 통 큰 포용력으로 껴안는다면 의미가 맞닿을 수도 있겠지만, 전문 경험을 강조하려는 본래 의도와는 분명 거리가 있습니다. 그의 말은 창의적인 삶은 새롭게 도전하려는 용기와 되풀이되는 실패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인내심에서 싹이 튼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2005년에 개봉한 ‘미스터 소크라테스 Mr. SOCRATES’라는 영화를 보면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고대 로마의 법률 격언인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이다(Dura lex, sed lex)’에서 온 말이지요. 1930년 대 일본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악법도 법이기에 이를 지켜야 했던 그의 실정법 존중 정신 때문이었다는 글을 썼는데 이 말이 잘못 전해진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선善을 일러 힘의 논리에 의해 무조건 상대를 이기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사회적으로 존경 받고 정의를 실천해야 할 재벌이나 국회의원, 판검사 등 고위 공직자들은 재력이든 권력이든 가진 자의 세계 곧 힘이 할거하는 선의 영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더불어 사는 곳으로 인식하고, 그래서 부당한 편법과 불법으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높은 불신의 벽이 과연 생겼을까요.

조선 초기 최세진이 편찬한 『훈몽자회(1577년)』를 보면 시금치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를 섭취하면 몸에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현대 의학의 연구 결과, 시금치에는 철분, 칼슘, 단백질, 비타민(A, C, E, K), 아연, 틸라코이드 이외에도 아주 많은 영양분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시금치 하면 잊을 수 없는 만화 인물 뽀빠이가 생각날 겁니다. 시금치를 먹고는 잃은 기력을 다시 회복하여 악한 무리를 물리치고 위기를 극복하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참 통쾌하지요. 그런데 힘을 되살릴 수 있는 요인은 바로 시금치가 함유한 철분이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같은 양으로 따지면 브로콜리나 배추보다 철분 함유량이 적습니다. 독일 화학자 에릭 본 볼프가 성분을 연구하던 중에 소수점을 잘못 찍어 실제보다 10배나 부풀렸던 것이 오해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사실보다 오히려 더 강하고 긍정적인 힘을 발휘한다면 이런 오류를 억지도 뒤집을 이유는 없겠지요. 하지만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가를 분명히 아는 지혜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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