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예부터 많은 이들이 사람을 두고 여러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가령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기준 삼아, 이를 잘 겪으며 풀어 나가는 사람을 접근형 인간, 그렇지 않고 이런 문제에 부딪치면 피하거나 외면하는 회피형 인간 그리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는 접근회피형 인간으로 말입니다.
또 세상과 자아와의 관계를 헤아려,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지혜로운 사람과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한때 아침과 저녁을 맞으며 자신은 과연 어떤 유형의 인간인가를 두고 세간에 화재가 되었던, 곧 논리적이고 계획적이며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난 아침형 인간과 사회성이 좋고 인간 중심적이며 솔직하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저녁형 인간이 있다는 주장도 기억할 겁니다.

그밖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나는 사람을 보릿과와 볏과 인간으로 나누는 것을 말하려고 합니다. 간명하게 정의하면 보릿과는 자랄수록 거칠고 꼿꼿한 인간을 빗댑니다. 볏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자아 성찰을 하는 인간을 의미하지요.
 
흔히 보리를 남성에 비유합니다. 수염이 있기도 하거니와 거칠면서 단 맛은 떨어지고 성장할수록(나이를 먹을수록) 고개를 빳빳이 세워 실속 없는 자존감만을 내세운다는 성향 때문이겠지요. 상대적으로 벼는 여성에 비유합니다. 수염이 없으면서 부드럽고 감미로운 맛을 주며, 자랄수록 흙을 향하는 시선으로 자신을 낮추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겸손의 미덕을 지녔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 논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모든 남성과 모든 여성이 다 그와 같지는 않으니까요.

시인 박철은 시「기록」에서 말했지요. 70년대 말 김포행 막차를 타고 들판을 달리는 겨울날, 차장 소녀가 「아빠의 얼굴」이란 노래를 불렀습니다. 자신의 피로를 씻으려는 듯 힘들게 일하는 버스 기사 양반을 위로하려는 듯 말이지요. 지금은 가난하지만 떳떳하고 보람 있는 삶을 그리며, 아빠를 비롯한 온 가족들을 사랑으로 껴안으려는 소녀의 소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는 눈물을 흘리며 감화를 받았습니다, 라고요.

프로야구 선수 이승엽은 홈런을 치면,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펄쩍 뛰며 기뻐하는 다른 선수와 달리 타구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숙여 달린다고 했습니다. 이미 풀이 죽은 투수의 기운을 더 이상 꺾지 않겠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배려가 그를 홈런 타자보다 더 훌륭한 선수로 기억하게 만듭니다.

여기 도도하고 지존하신 한 무리의 유명 재벌 회장과 장성들이 있습니다. 없는 자 약한 자를 우리 식구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면, 어찌 그들에게 폭언하고 폭행하며 조잡한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잊을 만하면 국민들 앞에 나와 습관처럼 고개를 숙이곤 진정성 없는 사과를 하는 장면 신물납니다. 회장님들 장성님들, 이젠 정말 어른으로서 옳은 값, 큰 값 하기를 기대해도 될는지요. 자라는 아이들의 눈은 매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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