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포스터.

오래전 이야기를 하자면 대학을 들어가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이성 친구를 사귄다거나 술, 담배 같은 어른들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8,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에게 아마도 가장 놀라운 사실, 기존의 알고 있던 상식 혹은 사실의 전복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5.18 광주’일 것이다. 쉬쉬하고 외면하는 사이 감춰진 그 충격적인 사실은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가슴 속에 ‘실체’가 되어 평생의 트라우마, 죄책감, 미안함, 울분, 분노로 자리 잡았다. 가해자는 멀쩡하게 떵떵거리며 사는데, 피해자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끌어안고 숨죽여야 했던 엄혹한 역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됐다.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소설이나 영화 혹은 예술에서 광주를 그려내는 방식은 진중했고 무겁고 어두웠다. 페이소스나 아이러니가 있었으나 블랙코미디의 범주였고 시선 또한 죄의식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렇게 묵직해야 했다. 그래야 약간의 죄책감이라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이 또한 얼마나 코미디인가. 한국의 근 현대사를 통 털어 잔인무도함을 따라갈 자 없는 가해자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소송을 한다 어쩐다 하고 있는데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는 상처는 엄존하고 있으니…….

이러한 맥락에서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복기해보자면 가슴 한 켠에 돌을 얹어놓은 듯 무겁기만 하다. 피해자의 <꽃잎>, 가해자의 <박하사탕>, 저항했던 시민들의 <화려한 휴가>처럼 질곡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고통을 겪는다. 그게 아니면 <스카우트>처럼 대놓고 우회하거나. <택시운전사>의 신선함은 여기에서 나온다.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도 유머코드를 놓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직시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니 말이다. 그리고 송강호.

이미 ‘대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그가 ‘역사’를 만났을 때 그 파급력은 정말 엄청나다. 그것이 영조이든 노무현이든 그만이 그려낼 수 있는 깊은 감정선으로 역사적 인물을 그렸고 대중은 그의 방식에 공감하며 웃고 울었다. 우연히 역사적 현장 속으로 들어간 택시 운전사 역시 송강호라는 배우를 만나면서 다소 허술한 줄거리를 보강하고 죄책감으로 봉인된 역사적 고통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놀라운 시너지를 보여준다. 진부하지만 한계를 알 수 없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놀라울 따름이고 감독이나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고맙기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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