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편의점 가는 기분

▲ 편의점 가는 기분 박영란 지음/창비/ 2016/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소년이 품고 있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새로운 지역이 개발되고 오래된 마을이 변해 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내 인물은 나의 의도를 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 감춰져 있던 힘을 발견해 낸 것 같다. 그 힘의 이름을 나는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말 중에서-

이 책은 저마다 자신만의 필요와 위안을 찾는곳 한밤중 편의점에서 일하는 열여덟살 소년 ‘나’와 각양각색 손님들이 나누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 이다.

주인공 소년 ‘나’가 편의점 손님들과 함께 보내는 겨울 한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년은 재개발이 예정된 오래된 마을에서 외할아버지의 마트 일을 돕는다. 외조부모와 살고 고등학교 마저 자퇴한 소년에게 마음을 나눌 친구라고는 그 도시에서도 가장 가난한 구지구 연립 주택에 사는, 다리가 불편한 소녀 수지 뿐이다. 소년에게는 밤마다 수지를 스쿠터에 태우고 달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어느 날 한마디 말도 없이 수지는 이사를 가버린다. 외할아버지는 도시 재개발 바람이 불자 마트를 관두고 신지구 원룸가에 편의점을 연다. 소년은 편의점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혹한의 겨울밤, 집의 보일러가 고장 나 냉기를 피하려는 꼬마 소녀와 엄마, 길고양이의 밥을 주는 캣맘, 허기진 배를 컵라면으로 채우는 젊은 청년 등이다. 잇따라 일어나는 밤중의 화재 사건을 계기로 소년은 그들에게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들의 아픈 사연에 공감하게 되면서 서서히 성장한다.

편의점에 모인 인물들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힘들고 지쳐있다. 하지만 결국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이를 극복해낸다. 소년은 언제가 수지를 다시 만나면 지독히 추웠던 지난 겨울 편의점에서 만난 사람들과 겪었던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이다.

‘한밤의 편의점’ 이라는 시공간은 신비하고도 정감을 자아낸다. 다음 손님은 누구일까 추측해보는 재미도 있다. 그러나 불평등한 사회, 거대한 자본 앞에서 약자일 수 밖에 없는 힘없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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