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잘 생김이 뚝뚝 묻어나는 정우성과 조인성이 등장한다며 연예정보프로그램마다 호들갑을 떠는 영화 <더 킹>의 막이 올랐다.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들이긴 해도 재미 없이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당연히 재미있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하지만, 안타깝게도 운(運) 때가 썩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오뉴월 꽃노래도 자꾸 들으면 지겨운 법이라 입에 담지 않으려 해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이 영화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만든다. 사이다의 청량감 없는 지지부진한 상황에 피로감만 쌓인다. 그러나 감독이 전하려던 의도는 온전히 와 닿는다. 검찰이 부패하면 어떻게 되는가.

▲ 조인성-정우성 주연의 <더킹>.ⓒ New

주먹 좀 잘 쓰는 초임 검사가 권력의 맛에 취했다. 그래서 자존심이나 정의 따위는 내팽개치고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더 큰 권력에 빌붙어서 출세에 목숨을 건다. 최고의 자리에 이르기 위해 개처럼 쫓아다니는데, 주인공이 속해있는 조직이 검찰이라는 게 문제다. 정의를 실현해야할 조직이 권력을 휘두르는 맛에 취해있으니 세상 잘 돌아가는 게 이상한 법이다. 한 알의 썩은 사과가 과일상자 전체를 좀 먹게 하므로 그 썩은 사과는 속히 걸러내고 버려야 하나, 그 역할을 해야 할 손길 자체가 썩어있으니 말이다.

이게 허구의 세계인 영화적 장치에 불과했다면 좋으련만 뉴스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세상이랑 다를 바가 없으니, 134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보다 울분이 차오르기만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30년 현대사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기에 현실감은 더하다. “대한민국처럼 권력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있을까?”라는 감독의 심경에 백 배 공감하고도 남아서 더 그렇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로마시대에 유스티티아(Justitia)로 바뀌었고 정의를 뜻하는 영단어 저스티스(Justice)가 되었다. 정의의 여신 저스티스는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또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법의 공평무사함을, 칼은 법 집행의 엄정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저스티스가 눈을 가린 이유는 보이는 것과 외압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법원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은 구미에 맞는 놈으로 골라서 법조문을 무기삼아 휘두르겠다는 의지의 상징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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