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물에서 사천 자긍심을 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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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에서 사천 자긍심을 좇다’
  • 이은식 문학박사(경남문화재 전문위원)
  • 승인 2017.01.09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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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사천을 빛낸 인물] ① 연재를 시작하며

사천을 빛내고 역사가 된 사람들…
고려 현종, 세종대왕, 관포 어득강, 부용당선사, 구암 이정, 효당 최범술, 박재삼

▲ 각산에서 바라본 사천시 전경

사천이 괜찮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거나 품격 있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천에서 살아가는데 자긍심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것이 이 글을 쓰는 화두이다. ‘역사 속 사천을 빛낸 인물’이라고 제목을 했으니, 사천과 연관이 있어야 하고, 현재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역사로 넘어간 인물이다.

인물 설정은 어느 시대부터 하면 좋을까? 기록이 있어야 역사가 되기 때문에 우선 사천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록 청동기시대의 자료들이 발견․발굴되고 있지만, 그리고 늑도에 기원전 시기의 대단한 유물과 유적이 있지만,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사천은 사물국(史勿國)으로 시작된다.

사물국 이름이 역사에 알려지기는 3세기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남해안에는 여러 나라들이 있었는데 이 나라들을 포상팔국(浦上八國)이라 하였다. 이름그대로 바닷가 여덟 나라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물(史勿)’을 그대로 번역하면 ‘역사가 없다’로 번역되나, 사물국이 사수(泗水)로 이름이 바꾸어질 때, 史가 泗로 변하는 것에서 살핀다면, 같은 음이라 음을 빌려온 것으로 비정할 수 있고, 勿이 水로 변하는 것은 勿이 우리말 ‘물’이라고 읽혀져서 한자 水로 변한 것으로 비정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사물이 ‘역사가 없다’로 해석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고 물과 연관이 있는 이름으로 보인다.

사물국이 오늘날 용현면 석계마을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사천의 어디인지 알 수는 없고 또한 그 시대는 부족국가의 형태였기 때문에 지금의 나라개념이 아닌 오늘날 하나의 면단위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형태의 나라들도 그러했다.

사물국 시기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전하지 않는다. 백제에 그리고 신라에 병합되어 한 지역으로 남아서 사물국이 사물현이 되었다가 다시 사수(泗水)로 바뀌었다. 신라 경덕왕 때의 일이다.

사수는 고려 현종시대에 사주로 이름을 바꾸고 행정적으로 크게 격상이 되었다가 다시 조선 태종시대에 현으로 격하되었다. 주(州)의 격을 낮추면서 천(川)이나 산(山) 중에서 선택하라고 해서 ‘천’으로 선택하여 사천(泗川)이 되었다. 그때 사천뿐만 아니라 인주는 인천으로 양주는 양산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2013년, 사천정명 600년이라는 이름으로 사천시에서 크게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사주가 사천으로 이름을 바꾼 지 600년이라고 축제를 벌였던 것이다. 고려시대 지역행정 단위로 주, 군, 현이 있었고, 사주는 주(州)라는 높은 격에서 사천이라는 현(縣)으로 추락하였는데, 이러한 일이 어째서 정명(正名) 600년이라고 하며 축제를 벌일 일이었을까?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는 ‘이름을 바로잡은 600년’이라며 ‘사천정명600년사’라는 책도 발간했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일이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사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전혀 어떤 중심에 섰다는 기록이 없다. 곤명과 사수는 백제에 속하였다가 신라에 속하였다 하면서 변방의 지역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수를 고려 현종은 번쩍 주(州)로 격상시켰다. 그가 어릴 적에 사수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조선시대 왕실은 사천을 최고의 명당으로 여겨 세종대왕의 태실지를 곤명에 조성하였다. 그리하여 사천이 다시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조선 중기에 들어서서부터 사천에 인재가 넘쳐나기 시작하였다. 관포 어득강, 부용당선사, 구암 이정이 그들이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 효당 최범술, 시인 박재삼을 사천의 인물로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앞에서 열거한 사람들 중에 현종, 세종대왕, 어득강은 사천출신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역사에서 사천을 빛나게 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부용당선사는 남양 출신으로 서산대사의 스승이다. 사명대사는 부용당을 더없이 높이 평가하였다. 이정은 사천읍 구암 출신으로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정치적으로 학문적으로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평가 받고 있다.

이 분들을 사천의 대표적인 역사 인물로 내세우는 준거는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다. 물론 이 외에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사천의 인물지가 아니다. 대표 몇 분을 모시고 나와서 사천을 밝혀 보려는 메시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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