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포스터.

실화가 배경인 영화는 언제나 무겁다. 생각해보면 자극적으로 풀어낼 것인가 또는 교훈적으로 보여줄 것인가의 차이를 가질 뿐, 충격적이지 않고서야 딱히 영화화될 이유가 없기도 하다. 열일곱에 납치되고 단칸방에 감금된 채로 무려 7년이나 살았던 소녀와 그의 아들의 이야기는 생각만으로도 묵직한 돌멩이 하나를 가슴에 얹는 기분이다. 그러나 자극적이지 않고 때로는 이렇게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구나 싶어서 더욱 놀라게 된다.

영화는 열일곱 소녀가 아이를 낳고 산 지 7년이 흐른 상황에서 시작된다. 납치, 감금과 같은 자극적인 장면은 아예 없고, 모자(母子)가 서로 의지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침내 탈출해서 세상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전부다. 이야기는 정말 앙상하기 짝이 없는데, 그 해자(垓字)같이 깊고 넓은 틈새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엄마와 아카데미 아역상이 있다면 무조건 받았을 아이의 연기로 메운다. (아역상은 1961년에 폐지)

문밖으로는 나갈 수 없고,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건 하늘을 향한 채광창과 TV가 전부다. 그래서 다섯 살 난 아이의 눈에는 엄마와 자신만 Real, 나머지 모두는 거짓인 세상에 산다. 가끔씩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남자는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헷갈린다. 그런 아이가 세상과 마주했을 때 느꼈을 감정은 환희이자 공포일 수밖에. 두 사람의 치유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가슴이 베이는 것처럼 서늘하지만 마른 감성이 들썩거리기도 한다.

물리적인 감옥을 벗어나니 마음의 감옥에 갇혔다. 감옥이 감옥인 줄 모르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로 알던 때도 있었다. 엄마와 꼬마는 그 감옥의 실태를 직시한 후에야 자신을 가뒀던 창살도 보인다. 이것은 영화이지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억압과 굴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대를 지나 생각의 자유를 누리고 마음껏 표현하던 시간을 접하고 나니, 오직 한목소리만 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통제는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 아닌가.

영화에서 그런 대사가 나온다. 가까스로 탈출한 아이에게 경찰은 문밖에는 뭐가 있냐고 묻자, 아이는 문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고 했다. 두 모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하늘만 향해 열려있는 채광창이 아니라 직접 열고 나갈 수 있는 문(門)이었다. 우리에게도 열린 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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