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어남』 | 올리버 색스 저 | 이민아 역 | 출판사 : 알마 | 원제 : Awakenings
나는 지금까지 타인으로서, 의사로서 그들과 더불어 그 경험과 감정을 공감하고 공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들이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니라면 나도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는 나이 먹고 삶에 지치지만 그만큼 더 차분해지고 깊어진다. (...) 그들은 존재의 근거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현실이라는 토대에 다시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병을 앓으면서 그토록 오래 세월 떠나 있던 최초의 토대, 발 디딜 땅, 최초의 보금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이룰 수 있었던 것, 이것이 내가 경험한 귀향이다. 그들의 경험이 나를 인도했으며,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당신을 인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를 고향으로 이끄는 저 끝없는 여행으로. -올리버 색슨, 이민아 옮김, <깨어남>, 알마, 418-9쪽.

올리버 색슨. 지난 8월 30일 타계한 그는 신경과 의사이자, 여러 권의 소설을 쓴 문학가였다. 우연히 한 편의 글(“부서진 인간에 귀 기울였던 ‘올리버 색스’”, 시사IN, 417호)을 통해 알게 된 그의 내력은 평범하지 않다. 그를 마음 속 멘토이자 스승으로 여겼던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에 의하면 그는 “평생 의사이자 환자였으며, 문인이자 심리학자요, 철학자인 삶”을 살았다. 뇌의 부분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의 특이한 사례들을 소설과 글을 통해 세상에 소개하고 또한 이해하려고 했던 그는 자신 역시 사람들의 얼굴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실인증, 그리고 약간의 틱 증세를 갖고 살기도 했다. 어쩌면 그러한 자신의 결함이 환자,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그를 구성해 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의 책 제목은, 이곳 저곳에서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작가가 이러한 내력과, 역사를 가진 사람인 줄은 몰랐다. 덕분에 그의 책과 글들을 찾아보았다.  
 
자신의 병이 깊이 진전되었다는 것을 알았던 올해 2월, 뉴욕타임즈에 그가 기고했던 글의 제목은 “My own life”, ‘나의 인생’이었다-이것은 그가 가장 좋아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말년에 쓴 자서전의 제목이기도 했다-. 암세포가 간에까지 전이되었고, 희귀한 눈의 종양은 제거 과정에서 한 쪽 눈 시력을 잃게 만들었음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그는, 그 자신의 운이 이젠 다 한 것 같다고 썼다. 행운은 여기까지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충분히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물론 그의 인생에도 시련은 존재했으나) '나는 이제까지 많은 사랑을 했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척 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 ‘감사함’이 가장 커다란 감정이라고 했다. 차분하고, 또한 그럼에도 충만함에 차있는 이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무엇보다, 나는 느끼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살아왔으며 그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탄생만큼 가장 커다란 사건일 것이 분명한 죽음이 임박했음을 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자신이 누려왔던 것, 받고 주어왔던 사랑, 사랑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세상,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이제 모든 것을 내려두고 눈을 감아야 하는 이의, 이 글을 쓰던 그의 마음을 며칠 동안 떠올려 보았다. 그렇게 담담하게, 또한 분노와 아까움 없이 겸손하게 내 앞의 죽음을 마주하려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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