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원 경상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

미국 플로리다에 살던 한 남자가 2001년 10월에 흡입탄저병으로 사망했다. 25년 만에 일어난 탄저병 사망자 발생으로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발병 원인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해 말에 네 명이 더 숨지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누군가가 우편물에 탄저균(Bacillus anthracis) 포자를 넣어 우송했던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전례가 없는 생물테러를 직면했기 때문이다. 미 연방 수사국(FBI)은 탄저균 DNA를 분석한 끝에 미 육군의 한 실험실에서 배양한 탄저균임을 알아냈고, 한 과학자를 용의자로 지목하게 된다.
탄저균은 포자를 형성한다. 이 포자들은 토양과 같은 곳에서 수년 간 생존할 수 있으며 강력한 독성을 나타낸다. 탄저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탄저병이란 이름은 그리스어로 석탄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이 병에 걸리면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검은색 딱지가 생긴다.
탄저균은 1876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순수배양 하여 분리해냈다. 당시만 해도 전염병이 왜 발생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할 땐데, 미생물이 사람과 동물에 생기는 병의 원인이란 것을 알아낸 최초의 미생물이 탄저균인 셈이다.

탄저균의 독성은 치명적이다. 탄저균은 소화기를 통해 감염되기도 하고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기도 한다. 탄저균에 오염된 고기를 섭취하면 장에 염증이 생긴다. 처음엔 구역질을 느끼고 식욕이 떨어지며 구토와 열이 난다. 더 진행되면 복통이 심해지고 구토에 피가 나며 심한 설사를 하게 된다. 소화기를 통한 감염자의 25~60%가 사망한다.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경우엔 더욱 더 치명적이다. 2001년 탄저균 사망 사고 역시 호흡기 감염이었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5월 27일 주한미군은 K55-오산 공군기지로 생균 상태의 탄저균이 반입되었을 가능성을 우리 당국에 알려왔다고 한다. 정부는 반입된 탄저균의 국내 전파가능성은 없으며 노출된 사람에게도 감염증상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탄저균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위험 물질의 반입경로가 정부관계기관에 미리 통지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안전장치도 담보할 수 없었음을 떠올리면 경악스럽다.

메르스로 홍역을 치르느라 탄저균 국내 반입 사건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히는 듯하다. 어쩌면 메르스보다 더 위험한 세균이, 그것도 민간항공을 통해 아무런 제제 없이 정부도 모른 체 반입되었고, 스물 두 명이 탄저균에 노출되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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