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선-삼천포 연륙대교 공사과정에서 수 많은 유물이 출토된 늑도 전경. 이렇듯 사천에는 독특한 문화유산이 여럿 있다.
문화재는 조상들이 남긴 유산으로서 삶의 지혜가 담겨 있고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그 중 건조물·서적·회화·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유형문화재,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 , 예술적 가치가 큰 것을 무형문화재라 부른다. 또 성곽·옛무덤·도자기가마터 등 사적지로서 가치가 큰 것, 경승지로서 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큰 것, 동물·식물·광물·지질·동굴·특별한 자연현상 등 생성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은 기념물이라 부르며, 의식주 등에 관한 풍속이나 관습, 이에 사용되는 의복·기구·가옥 등으로 전통적인 생활사의 추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민속문화재라 부른다.

그렇다면 사천시에는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지정돼 있을까?

사실 다른 지자체에 비하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인근 지자체에 비해 독특한 유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국가지정문화재는 모두 6건인데, 보물 1건, 천연기념물 2건, 사적지 1건, 무형문화재 2건이다. 그밖에 도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 문화재자료 등이 있다.(표 참조)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것 중 보존가치가 높은 것을 문화재청장이 등록한 것이고, 문화재자료는 시·도지사가 시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향토문화보존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시·도 조례로 지정한 문화재를 일컫는다.

보물 제614호 사천 매향비

이들 문화재 중 가장 눈여겨 볼 것은 보물 제614호 ‘사천 매향비’이다. 이 매향비는 곤양면 흥사리 묵곡천변에 있으며, 간석사업 이전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기수지역이었다. 매향의식은 불교의 미륵신앙에 기반을 둔 것으로, 하층민들이 어려운 현실을 불법을 통해 극복하려는 의지의 발로다. 당시 사람들은 복을 빌기 위해 강이나 바다의 바닥에 향나무를 묻었다. 이 의식은 정권교체기에 접어든 여말선초에 집중됐으며, 이 시기 남해안에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것과 연관이 있다.

사천의 매향비는 고려 우왕 13년(1387년)에 조성됐다. 비문에 따르면 승려 중심의 불교신자 4100명이 향계를 맺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의 살기가 평안함을 미륵보살께 비옵니다”라고 빌었다.
이렇게 매향의식 전체를 소상히 밝힌 것은 이 매향비가 유일해 매향의식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았다. 1978년 보물로 지정됐다.

다솔사 보안암 석굴

우리나라 불교 유적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는 경주 불국사 석굴암이다. 석굴암은 동양 불교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국내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와 같은 석굴이 이곳 사천에도 있음을 아는 이 얼마나 될까?

다솔사에 딸린 암자 보안암(곤명면 무고리)에 그런 석굴이 있다. 보안암의 창건 연대는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으나 14세기(1336년)경 이곡이 쓴 기록에는, “서봉사(지금은 절은 없고 그 터만 남아 있다) 남쪽 천령 위에 석굴을 만들어 미륵석상을 봉안한 것은 신라 신문왕(681~691)대의 두 왕자에 의해 창건했다”는 대목이 있다. 내부 석불이 고려후기 양식이라는 점에서 석굴 조성 시기를 이쯤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반면 신라 때로 추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석굴 중앙에는 돌로 쪼아 만든 석가모니의 좌상(坐像)이 안치되어 있고, 좌상 뒤 좌우에는 아주 작은 돌로 쪼아 만든 16구의 나한상이 배치되어 있다. 1972년 경남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됐다.

‘국제 무역항’늑도 유적

늑도는 삼천포항과 남해 창선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이다. 1979년 처음 유물이 발견되기 시작해 1985년 도 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됐다가 연륙교 조성공사 과정에 더 많은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2003년 6월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50호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늑도유적의 출토유물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을 전후한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일명 늑도식토기로 불리는 삼각형점토대토기가 다량 발견됐고, 일본 야요이계 토기도 나왔다. 중국 한무제에 주조된 반량전(동전), 낙랑토기 등 외국제품의 유물 등은 늑도가 해로를 이용한 국제교역이 활발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출토 유물은 1만3000여 점. 늑도의 규모와 발굴면적 등을 고려하면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로 인해 늑도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포상팔국 중 하나인 사물국(史勿國)의 중심지였을 가능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같은 해석은 사물국이나 사수현, 사천과 같은 지명이 이두식 표현인 물과 관계한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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