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e Courbet - un enterrement à Ornans, 1849-1850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스위스 국경 가까운 촌동네 프랑슈콩테 주 오르낭에서 부농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가 되어 안정된 생활을 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파리에 법률학교를 보냈으나 파리로 간 쿠르베는 법률가가 아닌 화가가 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가 필생을 두고 추구했던 예술적 가치는 사실성(Reality)이었다. 그가 그린 모든 작품은 실제로 존재하고 우리 눈에 확연하게 보이며 동시에 어떤 인위적 조작도 없는 인물과 풍경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사실주의(Realism) 회화의 대표자라고 부르고 있다. 
그의 대표작은 너무 많지만 그가 그린 이 오르낭의 매장(Un enterrement à Ornans1849-1850)은우리에게 사실(Reality)이 무엇인지 그림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의 고향 오르낭에서 죽은 그의외조부를 묻는 광경을 그린 이 그림은 오르세 입구에 걸려 있는데 크기가 무려 가로 6m나68cm 이고 세로는 3m 15cm 나 된다. 크기에 압도당한다.

하지만 그림을 자세히 보자. 먼저 사람들의 표정에서 죽음에 대한 슬픔이나 애도는 찾아 볼 수 없다. 마치 만화 혹은 캐리커쳐의 주인공처럼 제 각각 다른 표정의 인물들이 장례식에 와 있을 뿐이다. 또한 이 그림에서는 주인공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평균적 크기로 묘사되어 있다. 쿠르베 이전의 회화에서는 모든 그림에 중심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위계적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하지만 이 그림은 지극히 민주적(?)이라고 할 만큼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가장 파격적인 것은 역시 기독교적 질서를 한 순간에 무너뜨린 것이다. 쿠르베 이전의 어떤 그림에서도 십자가는 항상 그림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쿠르베는 이 형식을 단 번에 파기하고 만다. 이 그림에서 십자가는 그저 평이한 장식물로 전락해 버렸다.

따라서 이 그림은 기존의 질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는데 그 도전은 매우 큰 모험이며 동시에 큰 위험을 수반하기도 한다. 쿠르베는 이 그림을 만국 박람회에 전시하려 했으나 거절당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질서에 대한 도전에는 많은 장벽이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50명이나 되지만 동일한 곳을 응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은 쿠르베가 자신의 나라에서 지난 세기의 혁명으로 조성된 민주적 시민의 본질이 다양성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그의 사실적 회화로 옮겨 놓았을 것이다. 이 쿠르베의 회화적 투쟁은 그 뒤 20세기 초의 예술적 경향이었던 모더니즘의 기초가 되었다.

근대사회의 변화과정과 새로운 가치관 등을 쿠르베는 ‘오르낭의 매장’을 통해 구체화된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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