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의 천형이 되살아나다
어제 종일토록 갈증을 풀어줬던 비님 덕에 대지는 촉촉하고 보이는 것 모두가 시원스럽다. 사천강에는 제법 큰소리를 토하며 물이 흐른다. 메말랐던 논 옆 작은 도랑에도 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 비님의 위력이 실감난다.
그런데 저기 콘크리트로 뜯어 고친 도랑에 뭔가가 살랑거린다. 미꾸라진가? 차를 멈추고 가까이 다가가니, 도롱뇽 여러 마리가 노니는 것 아닌가.
바위산 꼭대기까지 바위 굴려 올리기를 되풀이해야 했던 그리스신화 속 시시포스(시지프스)의 천형이 저 도롱뇽들에게 전해진 것일까?
그러나 도롱뇽들에게 이 형벌은 너무 가혹하다. 시시포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라도 있었지만 이들에겐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지난해 겨울을 앞두고 추위를 피해 땅속에 숨었다가 이제 막 깨어나 활동을 시작했을 뿐인데, 올봄 모든 게 바뀌었다. 농수로정비란 이름으로 콘크리트가 흙과 돌, 풀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엔 저 콘크리트 터널이 너무 길어 보인다. 빗물이 다 마르면 또 어디로 숨어야 하나. 까치와 왜가리 눈을 피할 그늘조차 없으니, 오늘 하루라도 무사히 넘길 수 있으려나.
‘북극의 눈물’은 멀리 있지 않다. 내가 사는 이곳 사천 곳곳에도 미처 눈에 띄지 않은 채 흐르는 ‘눈물’이 수 만 가지다.
하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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