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에게 다가온 익숙한 풍경, 낯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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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에게 다가온 익숙한 풍경, 낯선 이야기
  • 김윤경 시민기자
  • 승인 2012.10.24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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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 대로 세계일주]22.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리다

▲ 작지만 아름다운 섬 멕시코의 '이슬라 무헤레스'
여행 중반까지 난 여행자란 내 신분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남들이 본인들도 관광객이면서 “거기는 관광지라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싫어”라고 말할 때 참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관광객이어서 관광지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난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왔고, 또 주로 군(軍)이라는 다소 패쇄적인 환경에서 생활한지라 나와는 많이 다른 모습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구경하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여행이 거의 끝나 갈 즈음 구경하느라 바빠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들이 하나, 둘 인식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장면. 전에는 멕시코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소녀들이 지나가면 그 독특함에 절로 눈길이 가며 ‘아, 예쁘다. 사진 찍으면 화낼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였다.

▲ 전통 옷을 입은 사람만 보면 그 독특함에 사진을 찍었다. 메리다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진... 전통 기념품을 팔던 시장에서 한 컷.
근데 ‘메리다’에서 알게 된 현지 친구들과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전통 의상을 입은 소녀 2명이 지나갔다.

그러자 친구들 중 한명이 “난 저것들이 싫어! 저것들은 산 크리스토발, 메리다, 깐꾼 등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몸을 팔아.” 라고 말하며 경멸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내가 “쟤네들 어린 소녀들인데?”라고 말하자,
“어린 소녀들? 쟤네들은 저 복장을 입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여기저기 몸 팔고, 쉬 남의 물건을 훔치는 더러운 아이들이야”

슬퍼졌다…….
그리고 ‘내가 참 단순한 시각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전통 복장을 입은 소녀들이 지나갈 때 더 이상 단순히 예뻐서 사진 찍고 싶다는 생각은 못할 것 같았다.

▲ 멕시코의 작은 섬 '이슬라 무헤레스'. 이 아름다운 장소들도 현지인과 관광객이 즐기는 장소가 은연중에 나뉜다.
두 번째 장면. 플라야 델 카르멘의 호스텔에서 미국에서 다이버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온 같은 방 룸메이트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캐리비안에 위치한 미국령 ‘푸에르토리코’가 고향인 그는 멕시코에서 다이버 삽을 열고 싶어 했다. 그 이유를 묻자 그가 말했다.

“미국 내에 유색인종이 하위계층인 것처럼 멕시코 사람들도 멕시코에 살지만 하위계층이야. 난 그들도 그들의 바다를 맘 놓고 편히 구경할 수 있는 저렴한 다이버 삽을 열거야. 내 아이들을 위해서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어 말하기 불편한 진실이었는데, 멕시코인 여자 친구를 통해 3명의 아이를 둔 그 친구가 명확히 이야기 했다.

그 친구가 말한 것을 처음 인지하게 된 것은 멕시코 ‘이슬라 무헤레스’ 호스텔에서였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들로 이용하는 그 호스텔에 멕시코 현지 청년 1명이 휴가차 왔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순간 묘해지는 분위기.

일하는 멕시코 사람은 익숙했지만 자기 또래의 멕시코인이 자기들과 마찬가지로 휴가를 보내러 왔다는 사실을 낯설어 했다. 더구나 외국인들만 있는 호스텔에 말이다.

왠지 그는 물에 갑자기 틘 기름방울 같이 보였다. 그런 그가 나에게 같이 나가 술 한잔 하자고 했을 때,
나에게도 그가 이질적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이라, 미안한 맘에 평소 같으면 “나 결혼했어. 딴 사람 알아봐”라며 직격탄을 날렸을 텐데, 오히려 이때는 내 무의식에도 그 청년을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나 스스로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넌 영어를 못하고, 난 스페인어를 못 해 같이 술 마시는 것이 의미가 없다”라며 돌려서 거절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 미친 멕시코인으로부터 날 구해주었다고 생각하는 이슬라 무헤레스에서 만난 귀여운 친구들.
하지만 나의 거절에도 쉬 물러서지 않는 청년의 모습을 보고, 바로 같은 방 아일랜드에서 온 금발 미녀가 자기들 무리와 같이 나가잖다. 아무래도 너 혼자 있으면 그 녀석이 계속 너에게 말을 걸 것 같다며…….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덴마크, 뉴질랜드, 호주, 아일랜드, 캐나다 등 다국적으로 구성된 이 친구들 무리에 합류했는데, 밤새 그 이야기를 한다. 본인들이 미친 멕시코인으로부터 날 구했다고.

그는 술 한 잔 마시자고 청한 것으로 바로 미친 멕시코인이 되었다.
그가 과연 다른 나라 관광객이었어도 그렇게 평가받았을까?
또다시 맘이 불편해졌다.

세 번째 장면.
호스텔에서 5분만 걸으면 부드러운 하얀 모래에 에메랄드빛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있는 거리를 벗어나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상가에 진열된 물품들도 보고, 내가 좋아하는 과일 음료는 없나 두리번거리며.

그때 웬 50대 초반의 멀쩡해 보이는 아저씨가 빈 플라스틱용기, 깡통 등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쓰레기통으로 다가간다. ‘폐품 수집하는 아저씨인가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쓰레기통을 뒤지던 이 아저씨가 쓰레기통에서 꺼낸 음료수병을 들더니 내용물을 마신다.

또 다른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 나는 나도 모르게 얼른 눈길을 돌렸다.

▲ 에메랄드 빛 바다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화이트 샌드로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플라야 델 카르멘.
여행 중·후반 페루, 볼리비아, 온두라스, 과테말라,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에서 어린 소녀소년들이 기념품을 판매한다든지, 혹은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끼어들면서 같이 사진을 찍는 대신 모델료를 달라고 하는 거북한 모습과 마주쳤을 때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하는 거라 생각했고, 너무 거대한 문제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그냥 내 의식 영역에 두지 않음으로써 그 문제를 인지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꿈꾸던 장소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너무나 소중해서 다른 심오한 문제로 내 머리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 하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불편한 진실들이 차츰 의식영역에 뚜렷이 인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문제 앞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나는 그 불편한 영상들의 되감기를 되풀이 하며 관광객 신분으로 돌아갔다. 잊지 않고 있다가 언젠가 무언가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은 김윤경 시민기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13개월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녀는 1997년 해군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0년 11월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지금은 보건교사로 일한다. 고향은 경남 진주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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