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오솔길] 영화 '광해' 리뷰

 

▲ 당파의 광풍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의 패자가 된 광해

조선시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두 명의 왕 중 한명인 광해는 안타깝지만 지금도 ‘군’으로 불리는 왕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므로 그가 왕으로 복위될 가능성은 이제 없다. 패륜과 악행을 일삼았던 것으로 기록되었고 동시에 그렇게 기억되는 그를, 매우 인간적이며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한 왕으로 표현하고자 대타를 기용한 영화의 기발함, 그리고 그 사실을 토대로 하여 광해를 ‘군’이 아니라 조선 15대 임금으로 복위시킨 영화가 가진 역사인식의 독창성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이런 독창성이나 기발함에 비해 스토리는 설득력도 없고 구성의 탄탄함도 약하다. 

배우들

▲ 매력적인 배우 류승룡

배우 류승룡(허균 역)의 연기는 볼수록 대단하고 매력적이다. 그가 연기한 인물은 바로 그가 되는 착각을 줄 만큼 그와 역할은 혼연일체가 된다. 이 영화에서 왕의 대타를 찾아 “왕노릇”을 교육하고 조정하는 그의 역할은 이 영화의 설정으로 볼 때 그렇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연기함으로서 이 모든 것이 뒤집어지고 만다. 어떤 면에서는 그를 위한 영화 같기도 하는 착각을 가지게 할 정도다. 반면 광해를 연기한 이병헌(광해, 그리고 광해 대역 1인2역)의 연기는 아슬아슬 경계를 걸어가는 듯 불안함과 어색함이 떠나지 않는다. 그의 연기로 만들어지는 가짜 광해는 이상적 군주의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연기가 이것을 지지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도부장 역의 김인권의 연기는 정도를 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는 이 설정을 충분히 잘 표현해내고 있다. 그의 오버연기가 전체적으로 무거운 영화를 떠받드는 중요한 도구가 되어 영화가 처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이런 역할은 조내관의 장광도 마찬가지인데 그의 진중함과 엉뚱함 그리고 인간적(?)모습은 도부장과 함께 이 영화의 하부를 튼튼히 지지하고 있다. 왕비역의 한효주는 이렇다 할 임팩트를 줄 수 없는 설정이었고 연기 또한 설정에 충실해 보였다.

광해군

문무백관을 굽어보는 옥좌에 앉은 가짜 광해는 명나라에 가져 갈 선물 목록과 금나라와의 전쟁에 참전할 군대파견을 보고하는 신하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예!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 곱절 천 곱절 더 중요하단 말이오!”

이 대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우리가 뽑아야 할 우리의 대통령이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날 만큼 위엄 있고 멋진 대사다. 당시 광해는 전란(임진왜란)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왕이었으며 그 전란의 폐허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백성을 구하려는 의지를 보인 왕이었다. 토지와 호적의 정비로부터 국방강화, 그리고 동의보감의 편찬, 절묘한 중립외교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광해의 업적이다. 비록 당파의 광풍에 계모를 유폐하고 이복동생을 죽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그의 아버지였던 선조의 책임이 없지 않았다. 결국 이것이 빌미가 되어 반정의 희생양이 되어 제주에서 일생을 마친 비운의 인물이 되고 만다.

풍자와 현실

▲ 진짜와 가짜가 만나는 장면. 풍자의 칼날이 현실을 향하고 있다.

대역 광해는 대역이 끝날 무렵 문득 정말 왕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사실을 뒤집어 보면 왕이라는 역할이 시정잡배가 할 수 있을 만큼 별 것 아니라는 말도 되고 동시에 왕이 되고 보니 무소불위의 권력에 마음이 뺏겼다는 뜻도 된다. 둘 다 지금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의 자리지만 사실 그 자리는 누구라도 심지어 시정잡배라도 가능한 자리라는 것을 영화는 이야기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풍자라는 무기로 현실을 찌른다. 그리고 그 풍자의 칼날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대선을 앞두고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변혁의 시대를 이끌어 나갈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일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며 그 결과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보면 올해의 선거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대역 광해가 며칠 동안 궁궐에 있으면서 벌인 선정(?)으로 백성은 잠시나마 행복해졌고 심지어 궁궐의 나인들조차 행복해졌다.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 크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에 따라 국민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고 국가의 방향이 얼마나 달라지는가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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