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오솔길]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 리뷰
링컨, 이런 사람이었어?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해방을 했으며 민주주의 정의를 명쾌하게 내린, 미국 사람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링컨, 그런 그의 삶에 슬쩍 뱀파이어 이야기를 끼워 넣어 놓고 그럴듯한 장치를 통해 관객을 설득시키려 한다. 기발하다. 그래서 약간 황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서양 사람들의 생각 속에 들어 있는 영생과 죽음에 대한 단선적이고 유치한 태도가 영화 곳곳에서 읽혀진다.
지역감정
남북의 지역적 특성 때문에 일어난 남북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뱀파이어의 픽션을 끼워 넣는 것 까지는 좋은데 남부의 군대를 모두 사악한 뱀파이어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어서 지역감정을 상당히 왜곡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처럼 지방색을 가지고 싸우는 나라는 아니지만 2012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정으로 볼 때 이러한 지역감정과 관계된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라도 왠지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영웅
할리우드는 지금까지 가상의 영웅을 통해 미국적 정신을 보여주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 소재가 다 되었을 뿐 아니라 가상의 인물에 대한 싫증을 자각한 듯 이제는 실존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젊은 시절의 링컨(벤자민 워크 분)은 불의에 항거하고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전형적 미국영웅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뱀파이어인 핸리(도미닉 쿠퍼 분)를 만나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과정은 악과 싸우는 할리우드의 영웅과 전혀 다르지 않다. 거기다가 역사적 진실까지 첨가해 놓으니 이전의 영웅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현실적인 영웅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다.
민주주의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이러한 생각은 더욱 분명해진다. 링컨의 이 말을 민주주의의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려 했으나 오히려 그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방황만 거듭하고 있다. 대선의 해인 2012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 영화가 개봉되었고 그 영화의 주인공인 북부의 링컨과 남부의 뱀파이어들이 다투는 상황은 우리에게 묘한 기시감을 준다.
물론 미신에서 비롯된 유치하고도 황당한 은을 입힌 도끼나 총알이나 포탄을 쓰는 전쟁의 국면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은 이 땅에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진보의 세력과 그 진보의 옷자락을 한 없이 잡아끌며 단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저들의 세계를 유지하려는 보수의 고집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 채 12월 대선을 기다리는 풍경과 너무 닮아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영화보다 훨씬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젊은 시절부터 목숨 걸고 뱀파이어를 물리치고 마침내 노예해방까지 하는 링컨이 아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