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의 오솔길]영화 '후궁' 리뷰

▲ 피를 부르는 자리이며 동시에 탐욕과 절망의 자리이기도 하다.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은 동서고금을 통해 언제나 있어 왔던 일이다. 많은 음모들이 그 뒤에 있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 음모의 중심에는 늘 여자들이 존재해 왔다. 

그녀들은 그녀들의 몸을 통해 절대 권력과 관계를 유지한다. 그 관계의 강약이나 경중이 그녀들의 운명을 좌우했고 그 운명의 배에 동승한 무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역으로 그녀들의 몸을 이용하기도 했다. 

음모, 그리고 피

▲ 유약함과 격정을 동시에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왕이라는 자리가 가져다주는 불행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성원대군(김동욱 분)은 왕의 이복동생이다. 영화상 시대배경은 모호하지만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볼 때 조선시대라고 가정한다면 왕의 이복동생은 역모의 주요 표적이다. 따라서 성년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거의 어렵고 설사 살아남는다고 해도 대부분은 사람구실도 못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다행히 이 영화에서는 왕이 병약한 틈을 타 대비(박지영 분)가 권력을 장악한 덕에 그녀의 아들인 성원대군이 이 정도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기 위해 대비는 자신의 몸을 이용하는데 이는 주인공인 화연(조여정 분)의 행보로 복제되는 느낌이다. 영화는 여인의 몸을 권력이자 동시에 권력을 창출하는 도구로 묘사한다. 

권유(김민준 분)와의 이별 이후 화연의 운명은 권력과 음모의 쌍곡선 속으로 내동댕이쳐진다. 물론 권유의 삶도 짓이겨져 버리는데 여기서 우리는 권력에 의해 파괴되는 힘없는 민중의 삶을 본다.  

음모는 음모를 낳는다. 하지만 그 음모는 규모를 키운다. 규모를 키운 음모는 통제하기 어렵고 마침내 그 음모를 만든 이의 심장을 노린다. 영화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현재 이 땅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이 부분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권력을 쥐기 위해 벌였던 음모와 술수는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그 일을 벌인 권력자를 노리게 될 것이다. 

미장센

궁궐의 지하로 설정한 밀궁은 권력의 속성을 잘 표현해 준다. 권력은 어둠, 혹은 폐쇄성과 보다 친밀하며 배신, 불신과 동류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해준다. 지표면을 우리 의식의 경계로 설정해보면 지하의 밀궁은 우리 의식의 이면에 존재하는 좋지 못한 여러 종류의 감정들이 엄청난 와류를 일으키는 것처럼 지하 밀궁은 그런 것들의 상징처럼 보인다.  

왕 주위의 여자들에 대한 감독의 설정 중 백미는 금옥(조은지 분)이라는 인물이다. 동서고금은 물론이고 현재 이 땅에서 권력에 기생하는 모든 이들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녀는 사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우리 이웃의 모습이거나 또는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곡학아세하는 이들, 늑대처럼 끝없이 탐욕에 침 흘리는 자들,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영혼, 심지어 자신의 영혼조차 기꺼이 파는 자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 준다.  

▲ 이들의 시선이 아마도 감독의 시선이며 우리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내시들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대단히 살갑다. 어찌어찌하여 내시가 된 권유로부터 약방내시(박철민 분), 그리고 상선 김계주(이경영 분)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다운 생각과 인간다운 모습을 가진 이들로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남성성을 잃은 그들에게서 가장 사람다운 모습을 묘사해내는 감독의 시선은 권력이라는 비뚤어진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환란 아닌 환란을 아무런 거름장치 없이 곁에서 그대로 지켜보는 지금까지의 피동적이며 도구적인 내시의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일 수 있다. 

화연과 성원대군의 정사장면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사가 아니라 응어리진 음모와 복수, 그리고 왕이 된 성원대군의 광기를 녹여내는 장치로서 대중성과 함축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물론 대중성이 먼저겠지만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몸짓인 남녀의 정사가 가지는 이미지와 권력을 위해 다투는 인간들의 행동이 묘하게 오버랩 되는 느낌을 준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