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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나의 사진이야기] 당신은 부재중

2023. 02. 28 by 조평자 사진작가

[뉴스사천=조평자 사진작가] 나에게 블랙앤화이트의 컬러는 슬픔의 색이다. 숨기고 싶은 색이다. 드러내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는 색이다. 가슴에 품은 흑백사진이 한 장 있다. 딱 한 장. 어머니가 막내를 무릎에 앉히고, 오빠가 어머니 옆에 앉고, 그 곁으로 내가, 내 앞에 남동생이 서 있는 가족사진이다. 우리는 3남 1녀 4남매다. 위로 오빠와 남동생 둘이 있다. 

가족사진 속의 표정들이 새삼 놀랍다. 1970년대의 옛 사진들은 대게 사진관 컴컴한 촬영실에서 조명을 펑! 하고 터뜨리는 방식으로 흑백사진을 찍었다. 찍을 때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었겠지만 유독 우리 가족사진 속의 얼굴들은 굳어 있다. 

오빠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 고여 있다. 괜찮아? 하고 누군가 말을 건네면 으앙! 울음을 터뜨리고 하나가 울면 따라 울어버릴 것 같은 동생들은 또 어떤가. 우리는 이날 왜 이렇게 슬펐을까. 슬픔의 밑바닥을 훑다 보면 아버지가 나온다. 아버지가 계신데도 아버지가 없는 가족사진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보낼 가족사진을 찍으러 시내로 나오던 그 밤을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저녁인데 오빠에게 교복을 입혔다. 내 긴 머리를 다시 묶어 주었다. 동생도 최대한 깨끗한 옷으로 갈이 입혔다. 조용조용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했다. 우리는 엄마 어디가? 엄마 왜 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막내를 업은 어머니를 그냥 따랐다. 마을을 빠져나와 저녁 버스를 타고 시내 사진관으로 가던 그 무거운 침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저녁마다 연필로 편지를 썼다. <사진 재중>이라고 쓴 편지봉투 속에 사진을 담아 사서함 우편으로 교도소에 복역 중인 아버지께 보냈다. 막막한 시간 동안 수인번호가 붙은 옷 속에 품고 있다가 출소할 때 아버지가 들고나온 사진이 이 흑백사진이다. 시간이 꽤 흘렀다. 슬픔의 온도는 내려갔지만 흑백사진 속에 밑줄처럼 그인 붉은 비밀 한 줄을 나는 지울 재간이 없어서, 이 사진만 보면 하염없이 눈물만 글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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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2023-03-04 17:47:17
아이구,
동병상린 입니다.
오봉수 2023-02-28 21:15:5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사진을 받고 아버지도 밤새도록 뜬 눈으로 슬퍼하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권용욱 2023-02-28 16:15:42
당신의 붉은 밑줄 기억이 사라졌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도 그런 유년의 기억으로 가슴 아팠을 것이고, 타툰이스트 아들도 그런 유년의 기억으로 몰래 눈물 흘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픔을 유독 오래 간직하는 시냅스의 종족입니다. 사랑했으므로 우리는 슬픔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슬픔의 형상을 산산히 분말하여 더 이상 슬프지 않도록 흩어야 합니다. 아버지도 나도 그리고 아들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서 슬픔도 기쁨도 없는 우주에 잊혀집니다. 그래도 당장은 나도 당신의 밑줄에 연필 끝이 흔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