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사천=조평자 사진작가] 나에게 블랙앤화이트의 컬러는 슬픔의 색이다. 숨기고 싶은 색이다. 드러내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는 색이다. 가슴에 품은 흑백사진이 한 장 있다. 딱 한 장. 어머니가 막내를 무릎에 앉히고, 오빠가 어머니 옆에 앉고, 그 곁으로 내가, 내 앞에 남동생이 서 있는 가족사진이다. 우리는 3남 1녀 4남매다. 위로 오빠와 남동생 둘이 있다. 

가족사진 속의 표정들이 새삼 놀랍다. 1970년대의 옛 사진들은 대게 사진관 컴컴한 촬영실에서 조명을 펑! 하고 터뜨리는 방식으로 흑백사진을 찍었다. 찍을 때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었겠지만 유독 우리 가족사진 속의 얼굴들은 굳어 있다. 

오빠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 고여 있다. 괜찮아? 하고 누군가 말을 건네면 으앙! 울음을 터뜨리고 하나가 울면 따라 울어버릴 것 같은 동생들은 또 어떤가. 우리는 이날 왜 이렇게 슬펐을까. 슬픔의 밑바닥을 훑다 보면 아버지가 나온다. 아버지가 계신데도 아버지가 없는 가족사진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보낼 가족사진을 찍으러 시내로 나오던 그 밤을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저녁인데 오빠에게 교복을 입혔다. 내 긴 머리를 다시 묶어 주었다. 동생도 최대한 깨끗한 옷으로 갈이 입혔다. 조용조용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했다. 우리는 엄마 어디가? 엄마 왜 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막내를 업은 어머니를 그냥 따랐다. 마을을 빠져나와 저녁 버스를 타고 시내 사진관으로 가던 그 무거운 침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저녁마다 연필로 편지를 썼다. <사진 재중>이라고 쓴 편지봉투 속에 사진을 담아 사서함 우편으로 교도소에 복역 중인 아버지께 보냈다. 막막한 시간 동안 수인번호가 붙은 옷 속에 품고 있다가 출소할 때 아버지가 들고나온 사진이 이 흑백사진이다. 시간이 꽤 흘렀다. 슬픔의 온도는 내려갔지만 흑백사진 속에 밑줄처럼 그인 붉은 비밀 한 줄을 나는 지울 재간이 없어서, 이 사진만 보면 하염없이 눈물만 글썽인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