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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는 먼 이야기

2022. 07. 06 by 구륜휘 작가
구륜휘 작가
구륜휘 작가

[뉴스사천=구륜휘 작가] 한 시대의 이야기가 예술로써 공유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자 권력이다. 한 자리에 있어도 모르는 음악을 그들이 떼창 할 때 느낀 나의 경외감 내지 위축감이 방증이다. 

며칠 전 참석한 공연 또한 그랬다. 80년대 말 활동을 하기 시작한 통기타 동아리였다. 회원들은 무대에서 제각각 자신의 목소리를 풀어냈다. 분위기가 차분해지면 전환할 누군가가 등장했고, 그는 힘차게 최신 트롯을 클래식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했다. 몇 십년간 이어져 온 기타 동아리는 젊음의 노년을 체감하며 경쾌하게 분위기를 즐겼다. 

뒷풀이 자리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어김없이 기타가 등장했고 누군가 Am코드 메들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사내가 기타를 잡으니 노래는 끝도 없이 70, 80년에서 맴돌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노래들… 나는 그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가장 젊었다.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여자의 일생,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The saddest thing, Donde Voy.

위에 나열된 곡들은 엄마 너머로 들었던 곡들이다. 가끔씩 내가 따라 부르게 된 곡들이기도 하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음악을 듣는 데에도 많이 부딪히고 깨지고 하며 교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나게 된다. 

종종 나의 생에 계획하지 않은 일을 생각해 본다. 내가 ‘밴드 환절기’로 노래를 부르게 된 게 그것이다. 작사를 해보고, 음악을 만들고, 합주를 하고, 공연을 하는 일은 풍부한 사회 경험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음악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유랑 악단이 되고 싶다고 떠벌리기도 하고 그랬다. 나의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은 없지만, 누군가와 이렇게도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준 사람은 구채민 씨다. 그는 노래를 짓고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삼천포 노산공원 바닷길 아래서 <등대길 101>을 운영하고 있다. 삼천포 바다 앞에서 펼쳐지는 ‘삼천포에 빠지다’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오래 전 그가 말했다. “륜휘씨, 무뎌지다로 작사를 해보는 게 어때요?” 이 말에 신이 나서 <나무가 말했지>를 적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작사를 한 뒤 입으로 멜로디를 붙여 만든 <모깨때기>에 그는 악보를 만들었다. 그랬기에 둘이서 그 곡을 연습하고 사람들 앞에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모깨때기>는 목계마을을 택호로 쓰는 심맹선,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난 늦은 나이도, 빠른 나이도 아닌 나의 삼십대를 존중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내가 젊다고 말하지만, 난 누군가 나이를 살아 온 횟수로 세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기준에는 ‘나’가 있다. 나보다 어른 같으면 어른스럽게, 나보다 아이 같으면 아이같이, 나랑 비슷하다면 친구 같이 대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많은 나이대의 친구들과 함께 한다.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하다면 더없이 반가운 사람이다. 우리의 공기는 그렇게 공명 할 테니 말이다. 

내가 가끔 또는 자주 <등대길 101>에서 구채민 씨와 저 먼 바다 끝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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