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Q

[일상의 발견] 쓰기 위해 걸어보는 건 어때요?

2021. 11. 02 by 구륜휘 바다가분다 공방 대표
구륜휘 '바다가분다' 공방 대표.
구륜휘 '바다가분다' 공방 대표.

[뉴스사천=구륜휘 바다가분다 공방 대표] 모든 길이 내가 걸어 갈 길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이 각별해졌다. 걷는 것은 은유의 말이 아니다. 두 발을 동력삼아 움직이는 육체적인 움직임 그 자체를 말한다. 큰 길에 있던 저수지 너머의 마을, 그 사이 심겨진 벼들을 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2주마다 내게 말한다. “햇빛에 좀 걸어 보자.” 난 의사 선생님의 반복적인 말을 신뢰하지 않기로 했다. 더욱더 집 안에 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이마트에서 장보다가, 아무 것도 필요한 게 없어서 개 간식을 살 때. 개가 고구마 치킨말이를 입에 물고 자신의 자리로 뛰어가는 것을 볼 때. 뚜껑이 고장난 커피포트. 번호가 매겨진 가로등. 유럽 빈티지 옷 뭉치. 녹슨 자전거. 

죽으려고 생각한 다는 것은 처절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나는 뚜껑이 고장난 커피포트, 번호가 매겨진 가로등, 유럽 빈티지 옷 뭉치, 녹슨 자전거에게 말을 건다. 죽을 만큼 살고 싶다면 운동장을 뛰어 내라고 했다. 여덟 시간이 다 되어도 뛸 수 있는 자만이 간절히 살아낼 수 있다고 했다. 죽고 싶었지만 마지막으로 뛰어볼 재간이 내게는 없었다. 약 먹고 늘어져 누워 있기 일쑤였다. 그 말이 귀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그래 봐야지 하고 다짐은 했다. 살아보고 싶었으니까. 

나는 이런 나를 사랑한다. 이 글을 쓰니 내 몸이 서늘해졌다. 거짓부렁이라도 좋다.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맞는 말은 자주 마주치지만, 그 말이 내게 와 닿기까지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내가 걷기로 마음먹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렸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을 읽으면서,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으면서도 걷지 않았다. 그냥 읽고 말았다. 그런데 그는 내게 다르게 말했다. “쓰기 위해 걸어보는 건 어때요?” 쓰는 것을 고민하는 요즘이었다. 그 지점에서 자극을 받았고, 걸어 보기로 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변하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세상이 내게 다가왔다.

언젠가 스승이 말했던 여덟 시간 운동장 뛰기도 해볼 심산이다. 살고 싶으니까. 살고 싶다고 고백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감사하다. 나는 커밍아웃 하는 심정이다. 죽고 싶어 하는 마음을 털어놓으니 그렇다. 그러려니 덮어두었던 것을 말해서 그렇다. 가족끼리만 알고 있어야 하는 공공연한 비밀을 이야기해서 그렇다. 

나는 여러번 차에 치였으며. 나는 여러번 목을 매었으며. 나는 여러번 허우적대었으며. 나는 여러번 약을 먹었으며. 나는 여러번 몸을 던졌으며. 나는 여러번 죽어서, 다시 죽는다 해도 새로울 게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요즘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보통보다 많이 우울하다고 했다. 옆에 있던 엄마가 불쑥 튀어 나와 말했다. “며칠 전에 목을 매려다가 못이 빠져서 실패했어요.”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륜휘야,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니?” 시무룩한 표정을 보며 나는 되려 반가웠다. 내가 심각하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입원을 권하지 않아서다. 폐쇄병동으로 보내지 않아서였다. 폐쇄 병동은 작은 사회라며 나를 설득하지 않아서다. 큰 사회에 있고 싶다고 울먹이지 않아서다. 

나는 살고 싶고, 엄청나게 간절히 살고 싶다. 그러던 중에 세상이 다가왔다. 나락이라는 말과 바닥이라는 말은 닮았다. 자음은 다르지만 모음과 받침이 닮아서 인가? 발음은 전혀 다르지만 나는 이제 바닥에 두 발을 딛기로 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