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
아침 7시, 생태학교에서 찬물로 샤워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원래 출발할 때 계획은 어제쯤 귀가하여 오늘 저녁 지역의 중요한 행사에 참석하기로 약속했는데, 올레길을 걷다 보니 도무지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최대한 늘려 잡아 내일(토요일) 귀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제 오후에 행사 담당자에게 전화해 "제주도에서 갑자기 폭풍이 불어 모든 선박이 발이 묶여 나갈 수 없다"고 하자 후배가 웃으면서 "배가 못 나오면 사람도 못 나오는거지요?"하고 호응해 준다.
생태학교의 아침은 자율 배식이다. 알아서 라면이던 뭐던지 챙겨 먹으면 된다. 서울 누님이 일찍 라면을 끓여 주신다. 이제는 진짜 아쉬운 이별을 나누고 서울 성님과 둘이서 생태학교에서 어제 되돌아 왔던 수월봉 입구까지 픽업해주시는 차량(속칭 올레 돌돌이란다, 국민차 소형 트럭이다) 짐칸에 실려 수월봉 입구에 도착했다.
수월봉은 해발 70미터로 바닷가에 절벽으로 우뚝 서 있었다. 정상의 "고산기상대"는 5층 전망대를 올레꾼에게 개방한다고 안내되어 있어 5층 전망대에 올라 경치를 한참 즐기다가 내려와 해안길을 따라 12코스 종점인 용수포구 가까이 도착했다.


여행을 해보니 좋은 옷이고, 좋은 집이고, 좋은 장롱이고 다 필요가 없더라. 배낭에 옷 몇 가지만 있으면 세상사 걱정이 없단다. 뭣하러 그렇게 불필요한 것들에 집착을 했는지 알수가 없단다. 집 떠나 보면 모두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말씀을 들어 보니 올레 여행길에서 거의 득도 수준으로 많은 것을 마음 속 깊이 느끼고 깨달으셨나 보다. 난 과연 여행을 마쳤을 때 마음 속에 무엇을 느낄 수 있을는지, 무엇을 얻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 새삼 나이드신 노부부의 마음 여행이 부러워 보인다.
그리고 노부부께서는 우리보다 뒤쳐져 오신 분들인데 먼저 출발하는 것을 보니 걷는 속도가 거의 속보다. 속으로 참 대단하신 분들이다. 저런 연세에 올레 11개 코스를 다 돌고, 이제 12 코스인데 저렇게 힘차게 걸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건강하신 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수포구를 지나 올레 길은 다시 해안을 버리고 내륙 깊숙한 곳으로 들어 간다. 곡선으로 이어진 농로를 따라 꼬불꼬불 이어지던 길이 작은 숲속길로 들어갔다 농로로 빠졌다가를 되풀이 한다. 작은 숲길은 저마다 특징에 따라 독특한 이름이 있다. 특전사 군인이 정비했다고 특전사길. 덩굴이 얼기설기 얽혀 마치 동굴처럼 생겼다고 동굴길, 고사리가 많이 있다고 고사리길 등등.






근데 서울 성님은 올레 전 코스 완주 기쁨보다 서운함이 더 많단다. 처음에 출발할 때에는 언제 전 코스를 다 마치나 하고 걱정 했는데, 막상 11코스를 시작할 때에는 완주할 수 있다는 기쁨보다는 벌써 올레 코스가 다 끝이 나버렸는가 하는 서운함이 더 많았단다. 이래저래 나 자신한테도 그렇지만 제주 올레길은 고생해서 걷는 것 자체 만으로도 중독성을 가지고 있나보다.
서울 성님은 마지막으로 한라산에 오르고 싶은데 도저히 체력에 자신이 없단다. 난 오늘밤 혼자서 야영하고 내일 마지막날 한라산 영실 코스로 오를 거라고 서울성님에게 전했고, 서울 성님은 내가 소개한 서귀포 찜질방에 숙박하고 다음 일정으로 한라산으로 갈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출발할 때 가능하면 혼자만의 야영을 위주로 숙박을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첫 날 이외는 야영을 하지 못해, 마지막날에는 꼭 혼자서 야영을 하고 싶다고 하자 서울 성님은 서운한 모양이다. 날씨는 춥지 않느냐. 혼자자면 무섭지 않느냐 등을 걱정하면서 함께 찜질방으로 가서 숙박하고 내일 한라산 영실로 올랐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모른 척하고 서귀포행 버스에서 중문으로 먼저 내리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혼자 외로이 중문 해수욕장 쪽으로 넘어가 해수욕장 입구 잔디밭에 야영하기로하고 배낭만 풀어 놓고, 수일 전 청주 성님과 서울 누님과 함께 지나치면서 들러 소주를 마셨던 해녀의 집에서 오늘은 혼자서 해물을 시켜 맛있게 소주를 한 잔 마셨다.

해녀의 집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는 해녀분께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하자 소주 한 병을 내어 주시면서 이젠 더 이상 장사하기 힘든 시간이라며 퇴근하고, 거센 파도 소리만 들리는 바닷가 테이블에 홀로 남아 감상에 젖어 하모니카를 불었다. 바다 저 멀리 보이는 한치잡이 배의 환한 등불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혼자서 멍청히 바라보다 잔디밭으로 돌아와 헤드 랜턴을 켜고 텐트 치고 올레길 여행 제주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