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9) 곶자왈이 아름다운 11코스

<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모슬포 게스트하우스 숙소에서 아침 7시 출발해서 모슬포재래시장 근처의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청주 성님은 다니는 교회에서 요청이 와서 올레길 여행을 오늘로서 마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셋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청주 성님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 청주 성님은 오전 동안 가파도나 마라도를 들렀다 오후에 비행기로 귀가하신단다.

서울 누님과 둘이서의 올레길 여행이 시작되었다. 모슬포 근처의 이런 저런 골목길을 지나면서 모슬봉 정상만 바라다 보고 걸었는데 어디선가 길이 어긋났나 보다. 그래도 대충 만나겠지 하는 심정으로 모슬봉 정상으로 향했다. 모슬봉 정상은 군사지기였고 군사기지 철조망 옆으로 지나 뙤약볕 속을 한참 걷다가 정난주마리아 묘지에 도착했다.

잠시 쉬면서 전에 몇 번 지나치면서 인사를 나누었던 서울서 자영업 하신다는 남자분 한 분과 처음 만나는 경기 아가씨 한분, 그리고 올레길을 종주하신다면서 전날 모슬포 올레 안내소에서 만난 싱글 남자 분 등과  인사를 나누다가 먼저 출발하고, 우리는 맨 뒤따라 출발했는데 작은 마을 정자에서 다시 만나 그냥 자연스레 일행이 되었다.

마을 길을 몇 개 지나 곶자왈에 도착했다. 곶자왈을 지나면서 제주도 한복판 평지에 이런 원시림이 보존되어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속 길이 1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 자영업을 하다가 잠시 업종 변경을 고민하며 쉬고 있다는 경기 아가씨.
▲ 곶자왈 . 아마도 이곳 곶자왈 때문에 올레길을 제주 내륙으로 돌리지 않았을까?
곶자왈을 나와 아스팔트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니 오후 1시 30분경 올레꾼들의 숙소로 환영 받는 생태마을에 도착했다. 생태마을 옆 식당에서 맛나게 성게 국수를 먹고 난 후 서울 누님과 경기 아가씨는 오늘 여기서 숙박 하신단다. 아쉬운 마음으로 서울 누님과 생태학교 교문에서 사진을 한장 찍고 서울 성님과 12코스로 길을 재촉했다.

▲ 생태학교 입구의 4.3위령비. 작은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세운 비석이다.

경기 아가씨한테 슬쩍 물어보았다. 4.3항쟁에 대해 아느냐고. 그랬더니 자기는 얼마 전에서야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읽었단다. 그 전까지 그냥 제주도의 민란쯤으로 생각했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지금까지 학교에서 듣고 교육받았던 내용에 대해 상당한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 아쉬움 속에서 서울 누님과의 마지막 기념 사진을 생태학교 교문에서 찍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 아니었다.
올레길은 곶자왈이 있던 내륙에서 다시 바다쪽으로 나아가는데 지겨울 정도의 평범한 마을 들판길을 한참 지나서야 겨우 바닷가길에 도착했다. 바닷가와 만나는 길목에 있는 작은 횟집에서 잠시 쉬다가 신도포구로 향했다. 들길을 버리고 해안도로를 걷다가 서로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또 길을 잃었다. 마을분께서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신다. 드디어 수월봉 입구에 도착했다. 함께한 서울 성님이 올레 안내 책자의 할망민박집에 전화를 하니 전화를 받지 않는단다. 난 그냥 다음 올레 종점까지 밤이라도 헤드렌턴을 켜고 그냥 무작정 걸어 보리라고 마음 먹은 중이었다.

민박 할망이 전화를 받지 않자 11코스 올레 안내인께 전화를 드렸더니 아까 만난 생태학교 선생님이다. 확인해 보니 할망민박집은 한창 지나쳤고 이후로는 12코스 종점까지는 민박집도 없단다. 다행히 생태학교까지 픽업을 해주신다기에 이리 저리 망설이다 함께 생태학교로 되돌아 가자고 했다. 사실 그날 혼자 밤길을 걸었다면 상당히 위험하고 길을 잃을 염려가 많았다는 것을 다음날 직접 걸으면서 알게 되었다.

다시 생태학교로 되돌아와 막 들어서는 순간 서울 누님과 경기 아가씨가 식사하러 나가다가 우리를 발견했다. 서울 누님이 한참 눈을 멀뚱멀뚱 뜨더니만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반가워하신다. 다시 만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맞닥뜨리니 그냥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단다. 여기까지 다시 되돌아온 상황을 설명하자 한참 웃으면서 그냥 바로 식사하러 함께 가잔다. 가까운 식당에서 닭요리를 시켜 놓고 서울 누님, 경기 아가씨, 서울 성님, 나 넷이서 제주 쌀막걸리를 곁들이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생태학교 작은 테이블에서 2차 술판이 벌어지고 다시 하모니카가 울려 퍼지고 진도아리랑 앞소리를 하면 다른 분들은 뒷소리로 화답하고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하고 드디어 술이 모자라 직접 가게에 가서 남은 캔맥주를 몽땅 쓸어 와서 함께 마셨다. 처음에 누가 다 마시나 했는데 결국은 하나도 남김없이 12개의 캔이 모두 바닥났다. 중간에 다른 일행들의 초대로 공연도 잠시 다녀왔고 열렬히 환영을 받았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도대체 몇 시인지도 모르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남자 숙소에서 잠에 곯아 떨어졌다.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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