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8) 지나쳤던 올레꾼 다시 만나니 또한 반갑네

<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이레째 새벽 동터기 전에 목이 말라 잠이 깼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 웅크리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문이 활짝 열려있다. 아침에 만난 서울 누님은 두 사람 다 지독하게 게으르다고 한다. 추우면 일어나 창문이나 닫을 일이지 끝까지 이불만 뒤집어쓰고 개긴다고.... 혼자서 조용히 일어나 민박집 바로 앞에 있는 화순 해수욕장에서 체조로 몸을 풀고 아침을 준비했다. 전날 설거지를 하고 구워먹다 남은 돼지고기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밥을 지어 서울 누님을 깨워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구수한 누룽지까지 끓여 먹었다. 오늘 가게 될 코스는 올레꾼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10코스인지라 잔뜩 기대를 하고 출발했다.

▲ 산방산을 바라다 보고 바닷가를 따라 쭉 걸었다.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그냥 신들린듯 걷고 걸었다. 아쉬운 점은 숲 그늘이 없다는 것이다. 지쳐갈 무렵 산방산 바로 아래 하멜표류지에 도착했다.

▲ 산방산 전경
▲ 하멜 표류지에서 하멜 아저씨와 함께 찰칵, 세 사람이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하멜 표류지를 지나 계속 해안길을 따라 걸으면서 송악산쪽으로난 바닷길을 따라 나아갔다. 약간 지루했는지 청주 성님이 걸으며서 하모니카를 불어보란다. 등산하면서 하모니카를 부는 사람도 봤는데 걸으면서 하모니카를 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거란다. 약간은 숨이 가빴지만 그런대로 걸으면서 하모니카를 불어볼만하다. 김광석 노래를 5-6곡 뽑아 제쳤다. 지나가던 수녀 올레꾼들이 웃으면서 쳐다보신다.

▲ 용머리 해안 가는 중 바닷가 야생화.
▲ 형제섬이라는데 혼자 속으로 부부섬으로 이름을 지었다. 부부 사이에 작은 아이가 있으니까.
송악산으로 오르기 전 해안 언덕길에서 내려다본 제주 바다는 바닥의 돌과 바위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하고 투명하다. 마치 보석이 젤리 처럼 녹아 있는 것 같다. 보석같은 바다, 맑고 파란 가을 하늘과 흰구름이 어우러져 한참동안 시선을 빼앗기게 한다. 송악산은 오름으로, 제법 높이가 높고 정상에서 바라보니 상당한 깊이의 화산구가 있었다. 지친 몸으로 급경사길을 헉헉 거리며 올랐고 서울 누님은 포기하고 지름길로 가신다.

▲ 송악산 에서 바라다본 가파도 그리고 마라도가 희미하게 보인다.
다음 목적지 모슬포로 가는 길은 그늘 없는 뙈약볕길이라 지루하고 특히 서울 누님은 어제부터 발가락에 통증을 호소하시더니 더더욱 심해지는가 보다.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신다. 원래 오늘은 모슬포를 지나 다음 코스로 진행하기로 했는데 못가면 어떠한가. 모슬포 도착 전 하모 해녀 쉼터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창을 쉬다가 출발해서 중간 중간 쉬다가 오후 1시경 드디어 모슬포항에 도착했다. 올레 안내소에 들러 대충 숙소를 정하고 짐을 내렸다. 이곳 역시 게스트하우스 방식으로 1인당 숙박료는 1만원이엇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올레 안내소에서 소개받은 모슬포 재래시장 입구에 있는 옥돔식당을 향했다. 제목과는 달리 보말칼국수가 맛나다고 알려진 곳이란다. 옥돔식당의 보말칼국수는 제주지역의 특별한 음식으로 아주 맛났다. 보말이란 해초만 먹고 자라는 고동인데 이 고동을 푹 고아서 국물을 내어 칼국수로 만든 음식이었다.

옥돔식당에서 뜻하지 않게 구면의 올레꾼을 만났다. 이틀 전 풍림콘도 벤치에서 아내를 위해 열심히 노래를 불러주던 부부였다. 누가 여기서 만날 줄 알았으랴.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즉석 공연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승낙하신다. 식당은 공연장으로 변했고. 연신 감정을 실어 70-80의 노래를 너댓곡 불러 주신다. 주인 할머니도 덩달아 신이 나서 연신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박수를 쳐주신다.

▲ 올레길 중 두 번의 인연으로 결국 공연을 보게된 서울서 왔다는 아마추어 가수분. 이틀 전 만났을 때 농담처럼 공연 언제하느냐고 물었는데 진짜 공연을 보게 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빨래도 하고 휴식을 취하다가 저녁 식사를 위해 모슬포 재래시장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일몰을 맞아 한참 경치에 빠졌다가 지역의 특별한 음식을 먹어봐야 된다면서 갈치전문점을 찾았다. 그런데 청주 성님이 먼저 쐐기를 박는다. 오늘은 무조건 일인 일병으로 하자고. 속으론 서운했지만 어쩌겠나. 맛나게 갈치조림과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며칠동안 고락을 함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져 스스럼 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청주 성님은 술자리에서 직장 후배가 대든다고 주먹을 휘둘러 이를 부러트리고, 서울 누님은 고3 수험생 자녀를 두고 2주 동안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다니고, 요즘처럼 험악한 분위기 속에 공기업에서 간 크게 일주일이나 휴가를 내어 혼자서 여행 댕기는 나나, 전부 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꼴통'들"이라고 말하며 한참을 웃었다.

▲ 모슬포 재래시장에서 바라본 저녁노을.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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