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난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물 여덟에 결혼을 했는데, 쌍둥이들이 갓난 아기때 교회 가족동반 산행을 마지막으로 십 년이 넘도록 야트막한 야산조차 올라가 본 기억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정확히 재 작년 추석연휴 마지막 날, 김해 부모님을 뵙고 돌아 오자마자 와이프와 아이들을 다짜고짜 집근처 산으로 끌고 갔다.

아마도 기름진 명절음식과 오랫동안 별 기복없이 느긋한 삶을 살았다는 나태함에서 오는 돌발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근래들어 뜬금없게도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었나?많이 나태해 져 버렸나?

그러던 어느날 거금 13만원을 주고 등산화를 샀다.

덜컥 등산화까지 사고 나니 산행이 더 간절해 졌다.

어느날은 그 놈을 신고 방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방바닥에 스크레치를

내 버려 와이프에게 핀잔을 들었다.

기축년이 밝고 나흘이 지났다.

아침에 교회를 다녀 와 벼르고 별렀던 등산을 '감행'했다.

슈퍼에 들러 생수 한 병과 초코바, 삶은 계란까지 샀다.

등산화를 산 지 대략 한 달이 지났나 보다.

아파트를 나서기 전 노랗게 물든 잔듸 위로 선명한 녹색 나뭇잎이

뒹굴고 있었다.

"이게 미쳤나....때가 어느 땐데..." 

 새 등산화, 때 하나 안 탄 완전 쌔삥이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자 마자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등짝을 타고 땀이 흐른다. 설상가상 오리털 파카까지 입었으니......

 내내 오르막만 있었으면 도중에 쓰러졌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림처럼 짧은 내리막도 있었기에 꾸준히 올라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걷다 보니 등산은 마치 인생살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중턱 오솔길 한 켠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나무 의자가 등산객을 반긴다.

외롭고 나이 든 산지기의 동무일 듯......

 얼마를 걸었을까 처음보다 숨 쉬기가 수월해 졌다는 것을 느꼈고 무채색에 가
까운 낙옆들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낙엽은 한 시절 화려했던 짙푸른 녹색 옷만큼 아름다웠다.

빛바랜 낙엽에는 은은한 녹차향이 스며 있고, 낙엽이 진 겨울산은 세탁을 자주 해 빛바랜 빨래처럼 자극적인 빛깔이 없어 눈을 편하게 해준다.

 산 정상을 앞두고 마치 길이 끊어지듯 나무가 가로막아 서 있었다.

얘기치 못한 상황에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니 막다른 길은 나무들 사이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시 걸었다.

 

산에 오면 찍을 게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는 순간까지 시선을 끄는 풍경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 감동이 무뎌진 것일까?

아니다. 내용은 없으나 자연은 어느 하나 감동스럽지 않은 것이 없을 터.

역시 무뎌진 것이다.

마침내 정상이다.

멀리 옥포만이 내려다 보인다.  

그리 높지 않았지만 정상에 다다랗다는 성취감이 느껴졌다.

하늘은 아침부터 내내 흐려 있고 시야도 좋지 않았다.

내심 북적대지 않기를 바랬기에 한적한 산행이 만족스러웠다.

 

저멀리  새로 만든 LNG선 한 척이 터그보트에 이끌려 파랑포 방파제 밖으로 나가고 있다. 새 해들어 처음으로 인도되는 배가 아닐까.

 오리털 파커 속의 땀이 어느정도 식을 무렵 누군가가 "사진을 찍기 별로 않좋은 날씨네요"라며 말을 걸어 왔다.

그는 옥포시내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며 자기를 소개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기념사진을 부탁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독사진을 가지게 됐다. 

 오전 11시 40분 경 집을 나서 대략 한 시간이 걸린 짧은 산행.

이렇다 할 이유없이 산에 가고 싶어 진 것은, 아마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태해져 버린 삶에 대한 내 속의 경종이 울린게 아닌가 싶다.

평소 눈에 익지 않은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등산은 값어치가 있다. 매일 걸어 다니는 거리, 회사, 건물들.

마치 나무 하나하나에 익숙해 져 있다가 전체를 내려다 보는 느낌. 

등산, 여전히 호감이 가는 취미는 아니지만 왠지 지금보다는 좀 더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휴일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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