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을 아름답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 한 조각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 길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추슬러보니 뜻밖에 기억의 조각들이 몇 개 안 된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확실치 않다는 속보가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고, 순간 내 정신은 그저 멍했던 것 같다. 당시 계획돼 있던 내 일과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 건지 헷갈려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2년 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졌을 때다.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하건만, 그래서 평소 여러 죽음에 의연한 편이었건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분이 스스로 택한 죽음 앞에는, 살짝 떨렸다.
"정작 가야 할 사람은 우린데, 너무 빨리 가삔네."
이날 오후에는 체육행사 등 몇 가지 다른 일이 있었는데, 생략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지인들과 조금 이른 술자리에 앉았다. 어느 술자리보다 무거웠고, 대화도 적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김해 봉하마을에서 전화로 분위기를 알리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술만 마시고 있기는 좀 그렇다.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분향소라도 하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맘 같은 사람이 분명 또 있을 거다."
낡은 자신의 승용차를 빈터에 세우고, 이를 배경으로 해 노 대통령의 영정사진과 태극기를 갖다 놓았다. 그 아래에는 향로와 촛대를 차렸다. 흰 국화 한 송이까지···. 노 대통령을 위한 '나 홀로 분향소'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세상사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처음 마음먹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나면 결말을 보는 법이다. 이 분향소도 그랬다. 출발은 한 사람으로 했으나 곧 여러 사람이 붙었다.
먼저 힘을 보탠 쪽은 조금 전까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이다. 제상이 없음에 안타까워한 이는 상을 준비했고, 상이 준비되니 누군가 제물을 차렸다. 곧 조문객들에게 술 한 잔 권할 수 있을 정도의 자리까지 마련됐다.
이 분향소는 자정을 넘기자 치워졌다. 그리고 일요일인 이튿날 저녁에 이어 서거 사흘째 되던 날 저녁에도 같은 장소에 '나 홀로 분향소'가 차려졌다.
그런데 이때쯤 큰 변화가 생겼다.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정식 시민분향소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시민들 사이에 높아졌고, 이에 따른 사천지역추모위원회가 구성됐다. 형식을 더 갖춘 시민분향소가 그럴 듯하게 차려지면서, '나 홀로 분향소'는 그 역할을 다했다.
이 시민분향소는 노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나는 날까지 줄곧 불을 밝혔다. 그리고 그 과정에 많은 시민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한 사람의 결심과 실천이 만들어 냈던 '나 홀로 분향소'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 줬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굳이 아름답게 떠올리는 기억의 한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