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시조에서 읽는 삶과 철학 그리고 역사

<이번 일본 사태를 보면서 일본인의 저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 했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의 민족성에 대해 회의를 품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도 본받을 만한 선대의 유전은 없는가 생각하다가, 작년 칼럼에 썼던 정몽주 님의 시조를 떠올렸습니다. 아래의 글은 그 당시 소개했던 정몽주 님의 시조가 지어진 배경과 역사적 사실을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형태로 썼던 것인데, 작은 고민이라도 불러일으키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지난 글에서 정몽주 님의 시조를 외국인에게 소개하였지만 그 싯귀를 역사적인 사실과 함께 전하지 못하면 그 글의 의미와 감동을 제대로 전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삶과 일치하는 시의 정신, 삶으로 표현되는 시야 말로 진정한 시의 정신이 아닐까요. 어려운 과제이긴 하지만 그 삶과 시를 함께 설명하도록 함께 시도해 봅시다.

Do you remember the poem of Jung mong-ju I told you before"

저번에 말씀드린 정몽주의 시를 기억하나요?

It was like,

-아래와 같았죠

When I die again and again

Even my bone to be the earth and my spirit seperated  like a fog

But my love for Him shall never disappear.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고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시랴.
 

This is beautiful poem but even his life was more dramatic.

-이 아름다운 시는 사실 그의 삶 때문에 더 아름답습니다.

He proved this poem with his life.

-그는 이 시를 그의 목숨으로 증명했지요.

He was the last patriot of Korea Kingdom before the start of Chosun Dinasty.

-그는 조선왕조가 일어나기 전 고려왕조의 마지막 충신이었습니다.

When his Kingdom seemed certainly replaced by new dinasty, the General of the new power invited him and gave the poem like this.

-그의 왕조가 새로운 왕조에 사라질 것이 분명한 순간에 새로운 세력의 유력한 장군이 그를 초대하고 아래의 시를 지어 보였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It means that,

아래와 같이 옮길 수 있지요.

Thing goes this way, or that way,

Who cares roots are scrambled in thousand deep mountain,

Like this shall we gat together and live long lives.

 

 Actually it was his last temptation  and Jung mong-ju knows that it was his last chance to save his life.

사실 이것은 그에게 온 마지막 유혹이었고 자신의 목숨을 구할 마지막 기회란 것을 정몽주는 알고 있었습니다.

But his answer was so clear and beautiful.

하지만 그의 대답은 분명하고도 아름다웠습니다.

It was beautiful because he got something much more important than surviving itself.

그것이 보다 아름답던 이유는 그에게 그 자신의 목숨을 살리는 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General Lee bang-won who ordered to kill him also so impressed by this reply, 13 years after his dead memorized him as the best honor of that period.

그를 죽이라고 명령한 이 방원 역시도 그의 이 답시에 감명 받아 정몽주의 죽음 13년 이후에 그 당시의 가장 명예로운 예로서 그를 기억하게 하였습니다.

가끔씩 우리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고 업신여기는 경우를 봅니다. 식민시대의 교육 때문일까요.

조선시대는 사색당파싸움으로 얼룩진 정치에 양반 상놈이 서로 증오하는 사회인데다가 관료들은 출세길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 역사에서 수백년에 걸쳐서 순수한 철학에 바탕을 둔 정당으로 정치를 이끌었던 사실을 볼 수 있을까요.

주기론과 주리론은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한 순수한 학문적인 노력을 끝없이 펼쳐 왔으며 현대적인 민주주의가 가능한 물질적인 토대가 없던 시대에서 왕에 대한 충성심은 현대에는 아예 사라져가는 부모에 대한 효심만큼이나 지고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스로에의 뿌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 없이는 외국어 공부는 독이 될 수도 있기에 두 번에 걸쳐서 정몽주 님의 시조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앞으로도 현대에 꼭 필요한 영어 표현들을 다루어 봄과 동시에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우리의 옛 글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칼럼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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