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자에겐 모든 기회에 어려움이 보이고 낙관자에겐 모든 어려움에 기회가 보인다.

비관자에겐 모든 기회에 어려움이 보이고 낙관자에겐 모든 어려움에 기회가 보인다.

The pessimist sees difficulty in every opportunity.
The optimist sees opportunity in every difficulty.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발견하는 것도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것 만큼 중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지막에 보는 것이 어려움 뿐이라면 아무 일도 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들은 사방에서 어려움을 발견하고 있다.

나라 전체가 혹은 전 세계가 어려움에 도달한 것 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과 남을 속이는 것이고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놓인 기회 속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확실히 알아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어려움 속에서 무엇이 기회이며 이 어려움을 극복할 대안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 내어 놓은 대안을 무조건 비판하려고만 들지는 않는가?

특히 그 대안을 내 놓은 이가 다른 지역, 다른 정당, 타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라면 무조건 안되는 조건만 찾고 있지는 않는가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인류 전체의 위기이며 각 지역이나 나라의 이익을 떠나 모든 이의 생존을 위해 협력하기를 요구하는 어려움의 시대, 즉 위기의 시대이다.


어떤 이와 술 한 잔을 기울이다 보면 모든 일이 불가능한 듯 보이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이들이 있다.

그와 대화하다 보면 이 일은 이래서 불가능하고, 다른 일은 저래서 불가능하다.

아무리 현명한 대안이라고 내어 놓더라도 모든 대안은 불가능해야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비관론을 대할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다른 곳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불가능해야 할 이유들에서 그 기회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어짜피 그에게서 가능하다는 말을 끄집어 낼 수는 없다.

오히려 비관론자의 모든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정말로 그것이 불가능한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비판적인 사유는 장차 실제로 작업을 진행 할 때에 부딫칠 수 있는 위험들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가장 염세적인 생각에서도 가장 건설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힘.


이것이 진정한 낙관론자의 힘이고 행동하는 낙관의 저력이 될 것이다.


새해에는 모두가 모든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찾아보기를,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어려움에서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보람있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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