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주 몇 잔에 깨닫는 내 삶, 내 나이, 그리고...


지난 금요일 저녁을 막 먹으려고 하는데 전화가 온다.

'뭐하는데, 너거 아들 우리 딸한테 맡기고 한 잔하자!'

'응, 언니 일단 저녁 먹고 내가 전화할게, 언니도 저녁 먹어'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은 아니지만, 왠지 싫지 않은 사람.

단 둘이 만난적도 없었는데.....

뭔 할 얘기가 있을까?

그래 일단 저녁을 먹고, 큰애와 협상.

얼마 전에 산 자석블럭 가져가고, 주말에만 보는 만화영화 보고, 두 시간으로 협상끝.

그렇게 언니랑 어디갈까하다 할매동동주가 생각났다.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의 설레임, 그 후 6.2지방선거로 복닥거리는 사람 내음새가 참 좋았는데.....

중년 부부가 앉아있다, 썰렁하다.

둘이 앉아 동동주에 명태찜을 시킨다.

‘저 아저씨는 단풍과네’

고개들어 맞은편 아저씨를 보니 얼굴이 옻이라도 오른 모양으로 붉다.

(여기서 나의 우둔함을 얘기해야겠다. 언니는 분명 단풍과라고 얘기를 했고 난 단풍들었네라고 해석을 했다. 근데 일요일 언니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 술 한 잔에 발갛게 상기되는 사람들을‘단풍과’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저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

그런 말이 오가면서 문득 여러 단어들이 귓가에 동동동한다.

 


MT, 야동, 새우, 보도방, 1종2종3종, 벌리동 19통, 딱지, 단풍과.....

올 해 들어 알게 된 이 단어들 중에서 단풍과는 설명하는 이 없이 단시간에 이해가 되었고, 벌리동 19통은 네 사람의 설명과 긴 시간 속에서 이해를 했다.

사람들 만나는 자리가 많아질수록 새로운 단어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가끔은 너무 궁금해서 하나하나 캐묻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재미있다. 내가 센스 없고 조금 멍청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런 단어들이 나왔는지 궁금증이 발동되면 가끔은 곤혹스러워하는 이들 또한 있다.

민가슴을 절벽으로만 이해하고 있던 내게 딱지를 설명해 주는 어느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그 난감함 표정은 지금도 눈에 선하지만 그렇게 알아내고, 허-어 웃고 말았다.

여성의 성을 비하하는 은어들에 대책없이 웃고 있는 내가 가끔은 웃기고, 여성 인권신장을 외치는 누군가가 아무 스스럼없이 내뱉는 은어들에 웃음이 난다.

 


얼마전 절친과 이야기를 하다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셋이 이야기를 하다, 절친이 자신의 내면 깊숙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한다.

허-걱.

힘들게 내게 털어놓았던 이야기를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친구에게 온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하다니.

아-하, 내 착각이였구나, 저 친구가 내게만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 보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기에 애틋하고 안아주고 싶은, 뭐든 주고 싶은 친구였는데 내 착각이였구나, 저 친구는 누구에게나 진심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였구나, 나만 여태 모르고 애태우고 있었구나.

괜스레 쓴웃음이 떠나지 않은 날이였는데.....

 


사무실로 지인이 찾아온다. 일을 얘기하다 오래된 친분이 있어 사적인 이야기를 하다 누군가를 비난한다. 한창 고스란히 그 이야기 듣고 있는데, 그 당사자가 온다.

근데 그 사람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살살 사람좋은 눈웃음으로도 모자란지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으며 진심어린 말을 토해낸다, 온 몸으로.

허-걱.

냉소적인 반응은 아니지만, 어쩜 저럴 수 있을까? 가능할까?

 


한 달만 있음 내 나이 그래, 마흔이다.

근데 여직 이러고 있다.

새롭게 만나게 될 언어들과 어떤 모습으로 사람을 바라봐야 할 지, 또 어떤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인 숨을 내쉰다.

 


삶에 정답은 없는 것이고, 내 삶은 내 삶인 것이라면 그런 것 같다.

유년시절을 지나 결혼을 하기전엔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어떤 행동을 할 때면 늘 되묻고 있는 물음이였는데.....

이제는 내 스스로와 내 아이들에게 되물어야 될 것 같다.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라고.

그 중심을 놓치지 말고 살아야겠다.

 


할매동동주를 찾을 때면 술술 넘어가던 술이 왠지 귓가에서 입속에서 동동동한다.

염려와는 달리 언니도 그냥 이런저런 일상을 얘기할 누군가가 필요한 모양이다.

그렇게 두 시간 이야기하고 동동주가 동동동 떠 있는 채로 남겨 두고, 약속 지키는 엄마는 아이들 만나러 가볍게 종종종한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