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체험마을 정태선 할머니의 60년 비법 엿보기
남의 집 차례 상을 본 적이 별로 없어 제주(祭酒)로 어떤 술을 쓰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막걸리와 청주 그리고 소주가 가장 흔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어떤 이는 “차례(茶禮)인데 차(茶)를 쓰지 않고 술(酒)을 쓴다”며 비판하기도 합니다만,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생겨나고 또 변해온 풍속이라 그런지 쉬이 바뀌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차례에 술을 사용하는 가정이라면 시중에 판매되는 걸 구입해 쓰기가 보통이지요. 그런데 아직도 차례에 쓸 술을 직접 담그는 가정이 간혹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정을 소개할까 합니다.
경남 사천시 곤명면 성방마을. 이 마을에는 샘이 유난히 많습니다. 샘은 경상도 사투리로 ‘새미’죠. 그래서 이 마을 곳곳에 새미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새미골’과 ‘참새미골’이 대표적인데, 특이하게 ‘샘이골’이라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발음으로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물이 땅을 깊이 파서 물이 괴게 한 것인데 비해 샘은 바위틈 같은 곳에서 물이 새어나오는 것을 일컫지요. 또는 땅을 깊이 파지 않더라도 물이 솟으면 샘, 곧 새미라 부릅니다.
이런 새미가 성방마을에는 여러 곳입니다. 마을공동 새미가 5곳이요, 가정집 개인 새미도 10곳입니다.
그뿐 아니라 물맛도 일품이라네요. 한때 마을입구에 있던 주막에는 이 샘물로 빚은 술을 맛보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합니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술 맛은 물맛”이라고. 게다가 ‘여름철 피부병이 낫는다’하여 찾아오는 손님도 많았답니다.
이쯤 되면 성방마을과 술을 잇는 연결고리는 충분한 셈입니다. 이 마을에는 지금도 술을 담가 먹는 가정이 많다고 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정태선(76) 할머니의 술 빚는 솜씨가 으뜸이라는 소문입니다.
보통의 시골집과 같은 정 할머니 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궁이 옆에 있는 작은 샘이었습니다. 이 집 뒤란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작은 샘에서 관으로 연결해 쓰기 편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박 바가지로 한 모금 들이키니, “캬~” 역시 꿀맛입니다.
정 할머니는 누룩과 지에밥을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습니다. 누룩은 직접 농사지은 밀을 빻아 물기를 더한 뒤 뜨끈한 아랫목에서 일주일쯤 삭혀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예전엔 빻은 밀을 가는 체로 쳐서 부드러운 것은 밀가루로 쓰고 거친 것만 누룩으로 썼다는데, 요즘은 굳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답니다.
“예전에 단옷날이면 여자들은 분칠을 하곤 했는데, 그때도 이른 아침 모 이파리에 맺힌 이슬을 얼굴에 바른 다음이라야 분이 잘 먹는다고 했지. 그것은 아마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뜻이었을 거야. 잘 모르긴 해도 이것 역시 그런 뜻이 담겨 있지 않나 싶어.”
정 할머니는 결혼한 지 58년째지만 그 전 친정에서부터 술 담는 법을 배웠답니다. 당시에는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술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서, 어려서부터 술 담는 법을 배웠고 집에는 1년 내내 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네요.
술 담그기에 있어 누룩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이 지에밥입니다. 사실 경상도에선 지에밥이란 말보다 고두밥으로 표현하는데, 사전에 찾아보면 고두밥은 ‘아주 되게 지어 고들고들한 밥’인 반면 술밑으로 사용하는 찐 밥은 지에밥이라 부르고 있더군요.
누룩을 만들어 두었고, 지에밥도 미리 지어 식혀 놓았기에 금방 끝낼 수 있었던 것이죠. 요즘 같은 날씨라면 달리 보온하지 않아도 5일쯤 지나면 술이 익고, 열흘쯤 지났을 때가 제일 맛있을 때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물 적당량은 과연 얼마를 뜻하는 것일까요? 정 할머니는 “쌀 닷 되면 술이 두 말 정도 나온다” 하십니다. 물론 술이 익으면 물을 더 타서 마셔야 할 테니, 술 양은 더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술 맛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물과 누룩 외에 숙성온도가 중요하다는데요, 계절에 따라 기온이 다른 만큼 이는 경험으로 터득할 필요가 있겠네요.
여기에는 농촌진흥청에서 ‘농촌체험용 미니가양주 제조기술 시범사업’ 마을로 지정해준 것도 한몫했습니다. 성방마을에는 정 할머니 말고도 술 담그기 시범을 보일 수 있는 가정집이 많다고 하니, 술 익는 냄새가 그리운 사람이라면 사천시 성방마을을 찾아가볼 일입니다.
정 할머니의 60년 넘는 술 담는 비법을 소개하면서도 ‘술 맛’을 전하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결혼한 뒤에도 줄곧 집에 술 떨어질 날이 많지 않았다는데, 얼마 전까지 병원 신세를 졌던 탓에 술이 똑 떨어졌다는군요. 술 맛은 다음 기회에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