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체험마을 정태선 할머니의 60년 비법 엿보기

코앞으로 다가온 한가위. 어디선가 술 익는 냄새가 풍겨오는 듯합니다. 실제로 경남 사천의 한 마을에서 술 담그는 모습을 따라가 봅니다. 곤명면 성방마을의 정태선 할머니가 누룩과 지에밥을 버무리고 있습니다.
한가위가 어느새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맘때면 벌초는 거의 끝났을 테고, 차례 상 준비와 선물 고르기에 신경이 조금 쓰일 때죠. 그런데 혹시 차례 상에 올릴 제주(祭酒) 준비도 하고 있나요?

남의 집 차례 상을 본 적이 별로 없어 제주(祭酒)로 어떤 술을 쓰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막걸리와 청주 그리고 소주가 가장 흔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어떤 이는 “차례(茶禮)인데 차(茶)를 쓰지 않고 술(酒)을 쓴다”며 비판하기도 합니다만,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생겨나고 또 변해온 풍속이라 그런지 쉬이 바뀌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차례에 술을 사용하는 가정이라면 시중에 판매되는 걸 구입해 쓰기가 보통이지요. 그런데 아직도 차례에 쓸 술을 직접 담그는 가정이 간혹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정을 소개할까 합니다.

경남 사천시 곤명면 성방마을. 이 마을에는 샘이 유난히 많습니다. 샘은 경상도 사투리로 ‘새미’죠. 그래서 이 마을 곳곳에 새미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새미골’과 ‘참새미골’이 대표적인데, 특이하게 ‘샘이골’이라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발음으로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 할머니가 시루에 밥을 찌고 있습니다.
길 이름도 ‘새미길’이며, 마을 앞 들판도 ‘새미들’이라 부른답니다.

우물이 땅을 깊이 파서 물이 괴게 한 것인데 비해 샘은 바위틈 같은 곳에서 물이 새어나오는 것을 일컫지요. 또는 땅을 깊이 파지 않더라도 물이 솟으면 샘, 곧 새미라 부릅니다.

이런 새미가 성방마을에는 여러 곳입니다. 마을공동 새미가 5곳이요, 가정집 개인 새미도 10곳입니다.

그뿐 아니라 물맛도 일품이라네요. 한때 마을입구에 있던 주막에는 이 샘물로 빚은 술을 맛보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합니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술 맛은 물맛”이라고. 게다가 ‘여름철 피부병이 낫는다’하여 찾아오는 손님도 많았답니다.

이쯤 되면 성방마을과 술을 잇는 연결고리는 충분한 셈입니다. 이 마을에는 지금도 술을 담가 먹는 가정이 많다고 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정태선(76) 할머니의 술 빚는 솜씨가 으뜸이라는 소문입니다.

좋은 술이 나오려면 물이 좋아야 한다죠. 정 할머니는 이렇듯 좋은 샘을 집안에 가졌습니다.
마침 정 할머니께서 13일, 다가오는 명절에 쓸 술을 담는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보통의 시골집과 같은 정 할머니 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궁이 옆에 있는 작은 샘이었습니다. 이 집 뒤란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작은 샘에서 관으로 연결해 쓰기 편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박 바가지로 한 모금 들이키니, “캬~” 역시 꿀맛입니다.

정 할머니는 누룩과 지에밥을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습니다. 누룩은 직접 농사지은 밀을 빻아 물기를 더한 뒤 뜨끈한 아랫목에서 일주일쯤 삭혀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예전엔 빻은 밀을 가는 체로 쳐서 부드러운 것은 밀가루로 쓰고 거친 것만 누룩으로 썼다는데, 요즘은 굳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답니다.

술 맛을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누룩이랍니다. 할머니 오른손에 있는 것은 손수 만든 것이요, 왼손에 있는 것은 시중에 판매되는 것이랍니다. 색과 향에서 차이가 컸습니다.
물과 함께 술 맛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이 누룩이라는데요, 정 할머니는 누룩을 지에밥과 섞기 전에 꼭 밤이슬을 맞힌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다음과 같이 답하시네요.

“예전에 단옷날이면 여자들은 분칠을 하곤 했는데, 그때도 이른 아침 모 이파리에 맺힌 이슬을 얼굴에 바른 다음이라야 분이 잘 먹는다고 했지. 그것은 아마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뜻이었을 거야. 잘 모르긴 해도 이것 역시 그런 뜻이 담겨 있지 않나 싶어.”

정 할머니는 결혼한 지 58년째지만 그 전 친정에서부터 술 담는 법을 배웠답니다. 당시에는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술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서, 어려서부터 술 담는 법을 배웠고 집에는 1년 내내 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네요.

술 담그기에 있어 누룩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이 지에밥입니다. 사실 경상도에선 지에밥이란 말보다 고두밥으로 표현하는데, 사전에 찾아보면 고두밥은 ‘아주 되게 지어 고들고들한 밥’인 반면 술밑으로 사용하는 찐 밥은 지에밥이라 부르고 있더군요.

지에밥은 찹쌀 또는 멥쌀을 시루에 찐 다음 식혀서 써야 상하지 않습니다.
정 할머니는 평소 멥쌀로 술을 빚지만 명절에 쓸 것임을 감안해 찹쌀지에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지에밥에 누룩을 섞어 버문 다음 솔잎과 유자를 조금씩 더해 독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적당량의 물을 부으니 술 담그기가 끝이 났습니다.

누룩을 만들어 두었고, 지에밥도 미리 지어 식혀 놓았기에 금방 끝낼 수 있었던 것이죠. 요즘 같은 날씨라면 달리 보온하지 않아도 5일쯤 지나면 술이 익고, 열흘쯤 지났을 때가 제일 맛있을 때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물 적당량은 과연 얼마를 뜻하는 것일까요? 정 할머니는 “쌀 닷 되면 술이 두 말 정도 나온다” 하십니다. 물론 술이 익으면 물을 더 타서 마셔야 할 테니, 술 양은 더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술 맛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물과 누룩 외에 숙성온도가 중요하다는데요, 계절에 따라 기온이 다른 만큼 이는 경험으로 터득할 필요가 있겠네요.

맨 먼저 누룩을 버무린 지에밥을 넣고 그 위에 솔잎가지와 유자 절인 것을 약간 깔고 갓 퍼 올린 샘물을 부으면 술 담그기 끝!
전통주 담그기. 설명이야 이렇듯 간단하지만 막상 직접 해보려면 만만치 않은 법이지요. 그래서 정 할머니를 비롯한 성방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전통주 담그기 체험을 해볼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농촌진흥청에서 ‘농촌체험용 미니가양주 제조기술 시범사업’ 마을로 지정해준 것도 한몫했습니다. 성방마을에는 정 할머니 말고도 술 담그기 시범을 보일 수 있는 가정집이 많다고 하니, 술 익는 냄새가 그리운 사람이라면 사천시 성방마을을 찾아가볼 일입니다.

정 할머니의 60년 넘는 술 담는 비법을 소개하면서도 ‘술 맛’을 전하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결혼한 뒤에도 줄곧 집에 술 떨어질 날이 많지 않았다는데, 얼마 전까지 병원 신세를 졌던 탓에 술이 똑 떨어졌다는군요. 술 맛은 다음 기회에 전하겠습니다.

정태선 할머니 집 전경입니다. 술 맛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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