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열 번보다 안전장치 챙겨야 큰 재해 막는다”

지난 4월28일 있었던 기름유출사고는 공장 안에 작은 침전조 하나만 있었더라도 막을 수 있었다. 지난 사고를 돌아보며 개선할 점을 살펴본다. 기름유출
지난 4월28일, 조금은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사천시가 기름유출사고에 대비한 방재훈련을 계획하고 있던 날, 우연하게도 실제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방재훈련을 취소하려던 사천시로선 뜻밖의 상황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천시는 방재훈련을 위해 준비했던 장비와 도구들을 실제상황에 투입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훈련과는 달리 실제상황의 기름제거작업은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고, 작업 중인 공무원들도 그 만큼 더 힘들어 보였다. 기름유출사고가 난 곳이 폭 3미터가 채 안 되는 좁은 개울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흔히들 재해는 때와 장소, 상황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고 말한다. 그러니 모든 상황을 가정해 놓고 대응하기 쉬운 곳에서 이뤄지는 훈련과 실제상황은 상당한 괴리감이 있기 쉽다. 이번처럼 비가 내리고 유속이 빠른 상황에서도 기름제거작업을 해야 했던 것이 좋은 예다.

따라서 재난과 재해에 대비하는 훈련은 좀 더 악조건을 상정하고 훈련에 임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훈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재해 위험을 미리 없애거나 줄이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기름유출사고를 보면 이런 ‘위험을 줄이는 일’에 소홀함이 엿보인다.

이날 사천시는 기름유출에 따른 모의방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실제상황을 맞았다. 기름유출
사고가 난 곳은 사천읍 두량농공단지 근처의 한 열처리업체였다. 열처리업체란 금속재료를 가열했다가 천천히 또는 빨리 식히면서 뒤틀림을 바로잡거나 상의 변화를 줄임으로써 안정 상태로 만드는 일을 주로 하는 업체다.

열처리는 전기나 가스를 주로 이용하므로 그 과정에 오염물질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현행법에서는 이 점을 고려해 오수처리시설을 따로 갖추지 않아도 되도록 정하고 있단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새어 나온 기름은 무엇이며, 예방책은 없었던 것일까.

열처리 과정에서 고열로 달아오른 금속은 담금질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사용하는 것 중 하나가 오일이다. 오일은 열을 식힘과 동시에 금속이 녹나지 않게 한다.

기름유출사고가 난 열처리업체 공장 내부. 컨베이어벨트 아래가 오일저장실이다. 기름유출
사천시 환경보호과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이 업체 공장의 냉각수 관이 터져 오일 저장실에 흘러들었고, 이것이 넘쳐 개울에 흘러들었다. 간단한 설명이므로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웃 해진다. ‘그렇게 간단히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다른 안전장치가 없단 말인가?’

안타깝게도 대답은 ‘그렇다’이다. 당시 공장 안을 둘러본 결과 담금질에 쓰이는 듯한 오일 저장실은 바닥면보다 낮은 지하에 있었고, 여기를 컨베이어 벨트가 통과하도록 돼 있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빼면 그 오일이 밖으로 넘쳐 나올 일은 분명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처럼 만일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전혀 손쓸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공장 건물이 공장 터 경계선까지 자리 잡은 상태에서, 공장의 안팎 어디에도 작은 침전조 하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일이 실수로 바닥에 쏟아지거나, 이번처럼 저장실에 있던 것이 넘쳐 나오면, 바닥의 홈을 타고 곧장 공장 바깥에 있는 도랑으로 흘러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장건물 바로 너머에는 이처럼 개울이 흐른다. 공장에서 물과 함께 넘친 오일은 다른 여과장치 없이 곧장 이 개울로 흘러들었다. 기름유출
놀라운 것은 이 공장이야 개별입지공장이라 치더라도, 사천시가 계획을 세워 조성한 인근 두량농공단지도 상황이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공단 차원의 오수처리시설이나 침전조도 없고, 입주 기업들 역시 관련 시설을 두고 있지 않았다. 이곳 역시 “법에서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각종 금속과 오일을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각종 찌꺼기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아주 특별한 양심을 가진 기업인이 아니고서는, 그저 빗물에 씻겨 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게 현실이다. 법에서 강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물에 가까운 이런 찌꺼기가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자연에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두량농공단지 아래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때론 부끄럽단 생각이 든다고 한다. 큰비가 올 때마다 시커먼 물이 내려오는데, 그 물로 농사지어 내다 파는 게 부끄럽다는 얘기다. 그런 탓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기도 하단다. 개울물이 이상하면 즉시 신고라도 해야 양심에 가책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이번 기름유출사고 신고도 농민들이 했다. 업체에선 그 상황이 하루 앞날 발생했음에도 자체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고 사천시에 연락하지 않았단다.

이번 사고로 열 번의 훈련보다 안전장치 하나 더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기름유출
이번 사고를 돌아보면, 이 공장에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작은 침전조라도 하나 만들어 두었더라면 기름유출이란 큰 소동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업체쪽 설명대로 유출된 기름 양이 200리터뿐이라면, 그 정도는 정말 작은 침전조로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여러 공무원들이 빗속에서 기름제거 하는 수고도 덜었을 것이고, 업체로선 벌금은 물론 기름제거비용을 물지 않아도 될 뻔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소, 침전조에 쌓인 찌꺼기만 제거해도 개울에 흘러드는 물은 훨씬 깨끗해질 것이며, 농민들은 수확한 농산물을 떳떳하게 내다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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