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현은 진주에도 고성에도 속했던 적 있어
곤양군은 한때 사천현보다 더 잘나갔다!
삼천포는 리에서 시작해 면·읍 거쳐 시로…‘영광’
그러나 지금은 ‘사천시’로서 하나여야 할 때
다름보다 같음에 주목하는 사천시민의 날이길

하병주 발행인.
하병주 발행인.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해마다 5월 10일을 사천시민의 날이라 부르며 기념한다. 옛 사천군과 삼천포를 합해 사천시로 거듭난 날이 1995년 5월 10일이니, 이를 기념한다는 건 자연스럽다. 그 햇수가 올해로 스물여덟 번째다. 통합 이래로 거의 한 세대가 흐른 셈이다.

그런데, 2023년 이 순간에도 사천시의 통합은 미완성인 걸까? ‘사천과 삼천포는 역사나 본질에서 완전히 다르다’라거나 ‘그때 통합하는 게 아니었어’라는 푸념이 지금도 가끔 들린다. 현실을 방증하듯 올해 사천시민의 날 기념식에서 박동식 시장이 애써 강조한 것도 “함께하는 마음”, “단결된 힘”, “하나 된 목소리”였다.

이미 알려진 대로 오늘의 행정 구역 또는 자치단체로서 ‘사천시’가 있기까지는 역사 속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나마 문헌으로 확인되는 고려 시대부터만 살피더라도 지금의 사천은 가까운 진주시, 고성군, 하동군과 경계를 넘나들었다.

사천시사에 따르면, 곤명현(昆明縣)은 하동군에 속할 때가 있었고, 진주목에 속할 때도 있었다. 사천의 옛 지명인 사수현(泗水縣)도 마찬가지다. 고려 현종이 사주(泗州)로 높이기 전까지 사수현은 고성군과 진주에 번갈아 속했다. 곤명현은 조선 시대에 들어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과 통합과 분할을 되풀이하다가 세종 19년(1437년)에 곤양군(昆陽郡)이 되었다. 사주가 사천(泗川)으로 이름을 바꾼 건 이보다 조금 빠른 태종 13년(1413년)의 일이다.

삼천포라는 이름은 삼천리에서 유래했다. ‘조선 시대 성종 17년(1486년)에 사천현 남면 삼천리에 삼천진(三千鎭)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천리는 이후 삼천리면(三千里面)이 되었다가 수남면(洙南面)으로 이름을 바꾼다. 대한제국 시기이던 1906년에는 진주군에 속했던 문선면(文善面)이 사천군에 넘어오고, 남양면(南陽面)이 고성군으로 넘어간다. 남양면은 1912년에 사천군 관할로 돌아온다.

사천시라는 오늘날 행정 구역의 얼개가 갖춰진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4년의 일이다. 전국의 지방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다. 곤양군의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과 진주군의 부화곡·축동·가차례면의 일부 지역, 고성군의 상리면과 하이면의 일부 지역을 편입했다. 4년 뒤인 1918년에는 수남면과 문선면을 합쳐 삼천포면이라 불렀다. 삼천포면은 1931년에 삼천포읍으로 1차 승격한 데 이어, 1956년에는 남양면을 합쳐 삼천포시로 2차 승격하기에 이른다.

세월이 흘러 사천과 삼천포는 1995년에 다시 하나가 된다. 둘로 나뉜 지 39년 만이었다. 처음엔 후유증이 제법 컸다. 시 명칭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시 청사 위치 문제로도 갑론을박이 길었다. 사천시의 재정 배분과 사용, 주요 정책의 결정을 두고서도 계속 잡음이 일었다.

지금은 갈등과 대립이 그 전만큼 심하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도 상처가 아물만하면 다시 덧나도록 부채질하는 게 있다. 정치다. 선거가 그 바탕에 있다. 소 지역주의에 기대어 표를 얻으려는 얄팍한 상술이 여전히 통하는가 보다. 선거가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난무하는 억측과 비방은 듣는이의 마음을 늘 불편하게 한다. ‘그래, 사천!’ 하며 가까스로 추스른 시민들의 마음도 헤집어 놓는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사천시라는 이름에는 긴 역사와 시간이 쌓여 있다. 사천이 현(縣)일 때 곤양은 군(郡)으로서 직제상 더 높을 때가 있었다. 삼천포라는 이름에는 리에서 시작해 면, 읍, 시로 자란 ‘영광’이 녹아 있다. 그 밖의 몇몇 지역도 사천이 아닌, 진주, 고성, 하동에 속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가 아닐까? 지방행정 체계가 분명히 잡혀 있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방행정 제도가 변화를 거듭한 끝자락, 지방자치를 논하는 시대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쓸데없는 일로 스스로 힘을 빼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

언젠가 행정 구역은 다시 바뀔 수 있다. 지자체의 운명도 생명을 지닌 것처럼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모습과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까닭이다. 미래 어느 즈음엔 사천이란 이름이 지고, 새로운 이름이 꽃 피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과거의 다름에 집착하기보다는 오늘의 같음에 주목하는 ‘사천시민의 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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