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고자정~흥무산

흥무산 숲길에서 만난 상수리나무. 햇잎에 내려앉은 햇빛으로 신비로운 느낌이다.
흥무산 숲길에서 만난 상수리나무. 햇잎에 내려앉은 햇빛으로 신비로운 느낌이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능화마을에서 왕욱의 부자상봉길을 따라 고자정에 섰다. 양쪽으로 등산로가 갈라진다. 북서로 이구산 가는 길, 남동으로는 흥무산 가는 길이다. 오늘의 목표는 흥무산(興霧山)이다. 흥무산은 예로부터 꽤 이름난 산이었던 것 같다. 사천의 명산으로 봉명산, 와룡산, 각산, 그리고 흥무산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를 보니 안개구름이 일어나는 산이로구나! 뭔가 흥미로운 느낌, 안개구름에 갇힌 저 산속엔 어떤 생명의 꿈틀거림이 있을까?

국수나무
국수나무

숲길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해서 걷기에 좋다. 왠지 모를 편안함과 넉넉함이 감도는 숲길이다. 선선한 봄바람과 신록의 햇살이 함께 하니 더욱 그러하다. 등산로 초입에 국수나무 하얀 꽃이 막 피어나고 있다. 가늘디가는 줄기 속이 흰 국수 가락처럼 들어 있어 국수나무가 되었다. 국수나무는 야생의 곤충들에게 인기 있는 밀원식물이다. 은은한 꽃향기는 많은 곤충을 불러들인다. 꽃이 활짝 피면 숲쟁이 저만치에서도 꽃내음이 달려올 정도니까. 개미가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로 의사소통을 하듯 식물은 꽃향기로 다양한 곤충들과 의사소통을 한다.

숲길
숲길

봄비 한줄금 할 때마다 숲은 감추었던 얼굴 한쪽을 새롭게 보여준다. 여기 신비한 늦봄의 정취가 있다. 신갈나무 이파리의 보드라운 초록 물감이 햇살 아래 말갛게 번져 나간다. 이내 마음 깊은 곳에서 초록 DNA가 꿈틀꿈틀 깨어남을 느낀다. 늦게 피어난 상수리나무 꼭대기에선 노란 새싹들이 꿈틀꿈틀 기지개를 켠다. 밝은 햇살로 피어나는 감미로운 풍경! 숲속에서의 감동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그저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쉴만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람결에 신록의 잎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바닷가 자갈밭에 물 들어오는 소리 같구나! 머리 위에선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들려온다. 새끼를 치고 여름을 지내러 멀리서 이 강산에 찾아든 거지.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는 살든지 죽든지 줄행랑을 치는 뻐꾸기 무리. 이들은 휘파람새, 산솔새, 딱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따위 새들에게 자신의 알을 일방적으로 위탁한다. 몸통은 큰데 다리는 짧은 신체 구조상 알을 품을 수 없단다. 그래서 후손을 잇는 방법을 찾았으니 탁란이다. 지금껏 살아남은 것은 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덩치가 작은 숙주 새들은 버거운 육아로 뻐꾸기 새끼를 키워내긴 하지만 자꾸 속진 않는다. 다른 색깔의 알을 낳기도 하고, 자기 알의 개수도 확인하고, 뻐꾸기 알을 쪼아 없애기도 하고, 둥지를 떠나버리기도 한단다. 자신의 알을 위탁하는 뻐꾸기 무리와 숙주 새들의 생존경쟁은 창과 방패처럼 공진화를 이루어 왔으니. 자연의 질서에 인류의 법과 관습을 들이대는 것도 어쩌면 색안경이리라.

노린재나무
노린재나무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능선, 저 앞 숲길에 한 무리의 흰 꽃나무를 발견한다. 꽃송이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는 노린재나무다. 가까이 코를 들이대니 은은한 꿀향이 난다. 아니나 다를까, 솜털 같은 꽃밭에는 이미 많은 종류의 곤충들이 달콤한 식사에 빠져 있다. 흥무산에 오르니 달콤한 나무들이 마치 안개구름 일어나듯 하구나. 오월은 유달리 흰 꽃이 많이 피는 계절이다. 그중에는 향이 달콤한 꽃들도 많다. 오월은 푸르른 숲의 정서가 가득해서 가정의 달이라 하는데 곤충들에게도 풍성한 선물이 주어지는 달이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라난다.

용동굴레
용동굴레

흥무산 정상에 올랐다. 그냥 지나쳐 가는 숲길에 이정표 하나 달랑 서서 위치를 알려준다. 멀리서 보면 산봉우리지만 그 속에선 그냥 숲길로 이어지는 산. 이런 산을 명산에 넣은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다. 그것이 산의 정기는 아니었을까? 산정에는 용둥굴레 포에 싸인 꽃이 갑옷을 두른 듯하다. 땅바닥에 바싹 엎드려 귀여운 꽃망울과 눈인사를 한다. 돌아서는 숲길, 저 건너 검은등뻐꾸기 쉴 새 없는 울음을 운다. 적응과 진화의 경쟁은 현재진행형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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