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사천=조평자 사진작가] 앨범을 꺼내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십수 년 전 자주 사진을 뽑으러 왔던 그녀. 사진을 좋아하고 그림을 전공하던 사람이었는데, 우리 동네 살다가 이사 간 이후 만나지 못했다.

그녀가 인화해 간 수많은 사진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무척 인상적이었던 사진 한 장. 어릴 적에 받은 어느 상장 뒷면에 증명사진들을 나란히 나란히 붙여 놓은 사진이었다.

그녀를 찾고 싶었다. 그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아버지와 딸의 사랑이 진하게 묻어 나오던 그 기억을 따라갔다. 전화번호를 세 번 갈아타고서야 그녀의 목소리와 마주했다.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를 반갑게 받아 주었다. 사진 한 장의 기억으로 우리는 두근거리는 통화 신호음처럼 그렇게 다시 연결되었다.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서랍 속에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머문 자리를 닦는 일이란 참으로 쓸쓸할 것이다. 그 속에서 다정했던 순간들을 만나고 곱게 성장해 온 모습도 언뜻언뜻 발견하면서 고마웠던 일, 미안했던 일들이 떠올라 때로는 눈물도 흘리며 앞으로 살아야 할 방향도 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따뜻한 이마를 짚어 드릴 수 없는 아버지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그녀의 서랍으로 소중히 옮겨두었을 것이다.

그녀를 만나기로 하고 문자 메시지로 사진을 먼저 받아보았다. 내 기억대로 장학증서 위쪽에 줄지어 붙어있는 부녀의 오래된 증명사진들이었다. 쓰고 남은 증명사진으로 만든 하나의 작품이었다.

옛것에서는 그리움 타는 냄새가 난다. 마치 물에 잠겨 있다가 몹시 그리울 때만 발목께를 드러내는 비 온 다음 날의 돌다리 같다. 사진으로 징검다리를 놓아, 한 걸음씩 딛으며 그리움을 건너다니고 있을 그녀를 빨리 보고 싶다.

우리 동네 벚나무에 온통 꽃이 피면 흩날리는 목소리로 반갑게 그녀가 나를 만나러 올 것이다. 환한 미소가 훅, 먼저 날아들 것 같다.(덧붙임: 사진 공개를 기꺼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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