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인간이 빚은 재주 가운데에 가장 으뜸은 말(언어言語)입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이 간직한 숱한 상념들을 소리(음성언어音聲言語)로 끄집어내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교감하는 의사소통의 도구로 씁니다. 인간은 말로써 개별화나 차별화 인식을 정제하여 사물에 걸맞은 명칭을 부여합니다. 나아가 공허하고 추상적인 개념까지 끌어들여 이름을 규정합니다. 

말이 말로써 온전한 형태를 갖춘 시점은 글자(문자언어文字言語)를 만들어 사용하면서부터입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한적 굴레에서 벗어나 한층 성숙한 전환점을 맞이한 것입니다. 말의 창조는 이전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무한의 효용성과 가치를 몰고 옵니다. 인간을 여타 동물과 구분 짓고, 인류에게 역사와 문화를 선물하며 행복과 희망이라는 꿈을 품게 합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역시 말이 지닌 미래 지향적 가치라는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말은 인간의 상상을 앞질러 급속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림으로도 예측하기 어려운 풍부한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경계할 점 또한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안이 철저히 인간 중심이며 극도로 편협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전율적이어서 강한 위협을 줍니다. 말이 지닌 긍정의 햇살을 확인하면서도 인간은 무겁고 우울한 감정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했으니, 말 잘 부리는 인간들 말로 망할까 두렵습니다. 말의 수명이 다하는 날, 인간은 물론 푸른 별 지구의 수명이 다하는 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북 예천군 대죽리에는 말 무덤(언총言塚)이 있습니다. 오백 여 년 전 대죽리에는 여러 성씨가 모여 살았는데, 무슨 연유인지 서로 헐뜯고 비방하며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지나가던 길손이 마을 뒷산을 보고는 “좌청룡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 모습이고, 우백호는 구부러져 길게 뻗어 위턱의 형세여서 개가 짖어대는 모양이라 마을이 시끄럽구나. 개 주둥이의 송곳니에 해당하는 마을 논 가운데에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세우고, 개의 앞니쯤 되는 마을길 입구에는 바위 두 개로 개가 짖지 못하도록 재갈바위를 세워라. 또 싸움의 발단이 된 말썽 많은 말들을 사발에 담아 장례식을 치르고는 주둥개산에 묻어 말 무덤을 만들어라.” 일렀습니다.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던 사람들은 궁여지책으로 이를 따릅니다. 그런 뒤 신기하게도 마을에선 공격하고 비난하는 말다툼이 사라지고 서로 평온하고 화목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작금의 정치 현실을 봅니다. 촌각이 멀다 하고 이놈 저놈 서로 막말을 토해 냅니다. ‘시체팔이’처럼 상처에 치명상을 덧입히는 마치 저승용어 같은 말도 내뱉습니다. 뼛속들이 아픔이 스미며 영혼이 멍들 지경에 이릅니다. 돌이켜봅니다. 우리는 말 무덤으로 보내야 할 말들을 머금고 있지는 않은지. 말 무덤으로 귀양 가야 할 인간들을 비호하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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