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코네스’에서 어렵게 얻은 입산 허가서로 산행 시작
안데스에선 숨차게 걸으면 안 된다…‘고산병’ 경계해야!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 힘겹게 도착한 ‘콘플루엔시아’

[좌충우돌 '안데스' 산행기] ② 혼자 걷는 길

높은 산에 오르면 늘 고산병(증)이 걱정이다. 쉬엄쉬엄 걸었음에도 이번에도 힘겹긴 마찬가지. 안데스 산행 첫날 도착한 ‘콘플루엔시아’.
높은 산에 오르면 늘 고산병(증)이 걱정이다. 쉬엄쉬엄 걸었음에도 이번에도 힘겹긴 마찬가지. 안데스 산행 첫날 도착한 ‘콘플루엔시아’.

[뉴스사천=박용식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여행은 떠남에서 시작되고, 되돌아옴으로써 마무리된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산으로 가는 이의 배낭 속 장비와 식량, 약품들은 모두 식구들 품으로 되돌아오기 위함이다.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오르고자 하는 등반 의욕은 위협받는다. 전화기 수신 안테나가 사라지고, 오가는 사람도 없고, 산 너머로 해가 지는 순간, 내려가는 체온과 함께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2022년 12월 28일. 산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출발지인 멘도사(Mendoza)라는 도시에서 산 입구까지는 약 170Km. 세 시간 정도 걸린다. 끝없이 펼쳐지는 포도밭과 올리브 과수원을 한참 달리던 버스는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사람을 태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차창으로 보이는 안데스를 즐길 만하면 버스가 서는데, 이건 또 무슨 일? 버스가 마을에 들어서자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스가 버스로 연결되는 것 아닌가! ‘아, 냉각수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도착 예정 시각인 오후 1시가 좀 지났을까? 작은 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모두 내리라고 한다. 버스를 바꿔 타란다. 출발할 때 1시 30분이면 등반을 시작하겠거니 여겼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멘도사 버스터미널에서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
멘도사 버스터미널에서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

차에서 내리자마자 살짝 느낌이 온다. ‘아, 이곳이 2,900m이지.’ 걸음이 무겁다. 오르코네스(Horcones)라는 곳에서 등반을 시작해야 하지만, 그 바로 앞 정거장에서 내렸다. 등반 대행사인 인카(Inca)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짐을 부치면 베이스캠프까지 짐을 보내 준다. 60kg까지는 300달러. 나는 17kg을 부친다. 식량과 장비를 따로 바구니에 담아 두면 된다고 한다.

입산료는 짐 수송비 300달러와 입산료 800달러 해서 1,100달러로 해결했다. 대행사의 기본 프로그램은 왕복 교통비, 1박 숙비, 세 끼 식사 등등 해서 입산료 포함 2,050달러로 되어 있지만, 다 빼고 편도 짐 수송비만 줘도 되냐고 물어보니 놀랍게도 된다고 한다. 가진 돈도 모자라고 해서 억지를 써 볼 생각으로 별로 기대하지 않고 물었는데, 이럴 수가! ‘어디까지 올라가 봤느냐?’ ‘사는 곳은 해발 몇 미터이냐?’ ‘정상까지 갈 거냐?’ 등등 입산 허가서에는 쓰는 게 한둘이 아니다. 169달러에 헬기 보험까지 들었다.

입산 허가서를 확인하는 오르코네스의 관리사무소에서 쓰레기 봉지 2개를 주면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돌아가는 버스를 물으니 하루 세 번이란다. 오전 11시, 오후 4시, 밤 8시. 베이스캠프 위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대변을 봉투에 담아와야 한다는 정보쯤은 미리 알고 왔다. 대행사에서 산 입구까지는 차로 태워 주었다. 헬기장을 지나서부터 등반을 시작한다.

버스에서 바라본 풍경.
버스에서 바라본 풍경.

차를 같이 타고 왔던 일행 세 명은 일찌감치 앞질러 간다. 고산에서는 숨차게 걸으면 안 된다. 다리 근육이 허락하는 만큼 걸으면 심장이 견디질 못한다. 힘껏 걸으면 다음 날 고산병에 걸릴 확률이 아주 높다.

다행스럽게도 첫 한 시간 동안은 발걸음이 가볍다. ‘왜 왔을까? 꼭 와야만 했을까?’라는 생각부터 ‘식구들은 잘 있을까?’ ‘돌아가면 잘해줘야지.’ ‘예쁜 꽃들은 내려올 때 찍어야지.’ 페이스북에 쓸 글귀를 생각하며, 오른다. 1리터 채워왔던 물을 반쯤 마셨을 때, 아 살살 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린다.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발걸음은 더 무겁다. 불과 두 시간 만에 여름에서 겨울이 된다. 눈은 거세지고, 급하게 바람막이 옷을 꺼내고 장갑도 두꺼운 것으로 바꾸고 귀까지 덮이는 모자도 쓴다.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도 없고 내려오는 사람도 거의 없다. 다행히 눈이 그친다. 6시쯤 되었을까? 오늘 도달해야 하는 콘플루엔시아(Confluencia, 3,390m)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 보니, 좀 서둘러야 한단다. 해가 지면 추워진다고 하는데, 해는 이미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어쩌지?’

지난 8월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까지 걸었던 경험은 아무 소용이 없다. 고소 적응이 좀 된 것으로 기대했으나, 하룻밤 정도 자고 온 것으로는 소용이 없는 듯하다. 더는 견디지 못할 만큼 심장이 뛸 때, 잔뜩 부푼 자존감 완전히 사라져 갈 때, 아 저기 멀리 텐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첫날은 등산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힘들다! 저녁 7시 40분에 도착. 텐트를 치니 밤 9시. 의료텐트로 가서 점검을 받으니 산행 불합격이다. 내일 낮 12시에 먹고 있는 고혈압 약을 들고 다시 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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