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이달의 인물 : 청년어업인 최준호 선장

[뉴스사천=심다온 기자] 자연에서 직접 먹거리나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는 1차 산업 현장에서 ‘청년’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소식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특히, 최근 해양수산부에서 ‘청년어선임대사업’을 시작하면서 청년어업인 모집 보도를 연일 내놓는 것을 보면, 어촌 지역의 소멸 위기가 제법 심각함을 짐작할 수 있다.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사천도 그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여기, 연 매출 1억에 달하는 소득을 올리며 유유히 비토섬 바다를 항해하는 청년 어부가 있다. 그가 들려주는 ‘슬기로운 어부생활’에 어쩌면 어촌 위기에 대한 해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2018년, 어업을 만나다
최준호 선장을 만나기 위해 비토섬으로 향했던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길게 뻗은 사천대교를 끝까지 달리고도 하봉항이 있는 비토리 마을까지는 또 한참 달려야 했다. 초겨울 공기가 차분하게 매달린 비토교를 지나니 곁눈질할 필요 없이 한눈에 바다가 들어왔다. 오전 11시, 조업을 나가는 최 선장을 따라나섰다. 저 멀리에는 가두리 양식장들이, 항구 가까이에는 서너 척의 배가 바다에 누워 있다. 일찍이 출정준비를 마친 ‘진일호’, 최준호 선장의 배가 홀로 출항했다. 잠자던 항구가 와짝 깨는 듯했다.

“요즘에는 물메기가 철이에요. 주로 11월부터 2월, 3월까지 잘 잡혀요. 회유성 어족이라 겨울이 되면 알을 낳으러 연안으로 오는데, 이쪽 지역이 빠른 편이에요. 일찍 왔다가 일찍 빠져나가죠. 1, 2월이 되면 삼천포 발전소 방파제 바깥쪽으로 이동하고 그 이후로는 사량도 밖으로 빠져요.”

고기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꿰뚫고 있는 그가 능숙하게 통발을 끌어올릴 때마다 토실토실한 물메기가 팔딱거렸다. 배의 아릿줄에 달린 통발들을 양승기가 부지런히 감아올리는 동안, 최 선장의 눈과 손은 틈틈이 조타기를 오갔다.

펄떡거리는 물매기를 들어보이는 최 씨.
펄떡거리는 물매기를 들어보이는 최 씨.

“2018년에 아빠가 취미 삼아 쭈꾸미 낚시 통발을 했던 배를 제게 주셨어요. 처음으로 어업에 발을 들이게 된 때죠. 당시에는 조금씩 조업을 했었는데 하다 보니 돈이 보였어요.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통발과 어구를 더 사기 시작했어요. 철마다 다른 통발을 쓰거든요. 통발을 놓는 시기와 위치, 장소가 다 달라요. 제가 주로 잡는 것들은 낙지, 갑오징어, 쭈꾸미 정도에요. 요즘 같은 때는 물메기도 하고요. 투자를 많이 했고 그러다보니 소득도 이미 원하던 액수는 넘었어요. 작년부터는 매출로 따지면 1억 초반대가 됐어요.”

올해 그의 나이 서른 하나. 2500개가 넘는 통발을 손질하며 온전히 혼자 조업한 물량으로 ‘억’ 소리 나는 매출을 올리는 매우 ‘슬기로운 어부’지만 오롯이 홀로 견뎌야 하는 것들도 많다. 

만만치 않은 어업
“한번 씩 공허할 때가 있어요. 문화생활 할 수 있는 지역과 멀리 있으니까 일이 끝나고도 잘 안 나가게 되요. 때로는 멀리 통영 풍화리 쪽으로도 조업을 가는데 바다에 배를 띄어 놓고 잘 때도 있어요. 편도 2시간에 기름 값도 있고 하니까. 2018년에 낙지가 많았던 기억으로 한번 씩 확인 차 가는데 막상 가면 잘 안 잡혀요. 그럴 때는 바다에 대고 말하죠. ‘한 마리만 더 보내줘!’, ‘한 마리만 더 와라..!’ 배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긴 해도 주5일제에 얽매이는 삶은 싫더라고요.”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에 장남으로 자라면서 일찍이 생업을 걱정했던 그는 사실 사천읍에 있는 자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농업에 먼저 발을 들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1, 2년 동안은 경북 영천에 있는 마늘과 양파 농장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실은 2015년에 비토에 내려오면서 농업을 계속 하려고 했어요. 동네 어르신께 땅을 빌려서 마늘과 고추를 심었는데, 영천에서 본 것과는 환경이 많이 달랐어요. 농업을 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이 없으니 반찬거리 하는 것 밖에는 안 되는 거죠. 지금도 마늘, 고추, 대파 정도의 농사는 짓고 있어요. 겸업으로.”

일해 본 경험이 있었던 농사일보다 수산업은 만만치 않았다. ‘바다가 좋아서’라는 이유로 귀어를 했던 많은 사람들이 무턱대고 배를 끌었다가 수없이 낭패를 보는 곳이 바다이니 말이다. 다행히 그는 인근 검섬에서 어업을 하던 친구의 삼촌을 소개 받아, 헤매는 시간을 대폭 줄인 복도 얻었다.

“지금도 저의 사부님이지요. 사실, 수십 년 동안 알고 있는 ‘포인트’나 통발을 내릴 위치, 배를 모는 방향...이런 것들은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으면 수백일 조업을 나가도 알아내기가 어려워요. 사부님과 당시 서울에서 귀어를 했던 두 형님이 있었는데 그분들도 함께 마치 ‘선단’처럼 같이 다니며 물 때 조업을 했어요. 조금시라고 한 달에 한 15일 정도를 했죠, 제가 초보라 실력이 안 되긴 했지만, 날이 궂어 조업을 안 하면 술도 한잔 하면서 어울리는 것이 재밌었어요. 2020년부터는 혼자서만 하고 있는데 그때가 종종 그립죠.”

평범하지만, 또 특별하게 오롯이 ‘바다 사나이’로 살아가는 청년 어부, 최 씨. 
평범하지만, 또 특별하게 오롯이 ‘바다 사나이’로 살아가는 청년 어부, 최 씨. 

삶의 터전, 그 이상의 바다
‘그 때 그 형님들’은 지금은 모두 어업을 관두고 다른 생업을 하고 있다. 자녀들 교육 문제 등 터전을 옮겨야 하는 이유들이 있었지만, 잡는 사람보다 고기가 적어진 탓이 가장 컸다. 그러나 생물 개체수가 줄어들고 바다의 인심이 야박해진 것은 ‘사람’ 때문이라며 그는 힘주어 말했다.
  
“최근 2-3년 동안 남강댐 방류로 인한 담수화를 체감하고 있어요. 그리고 폐어구들 때문에 바다가 정말 썩어가요. 바다에 나가보면 다 보여요. 통발을 안 쓰는 시기가 있는데 그 어구들을 수거하지 않고 그냥 버려둬요. 그럼 그런 것들 때문에 개체수가 줄어들고 바다에서 생업을 하는 게 힘들어져요.” 

어떻게든 넉넉한 살림을 짓기 위해 또래보다 의젓하고 부지런히 살아온 그에게 바다는 ‘직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바다는 삶의 터전,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최준호 선장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최준호 선장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올 봄까지만 해도 ‘나가면 돈이다’라는 생각으로 재미를 느꼈는데,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니 바다를 보는 시선과 생각이 바뀌었어요. 바다가 그 자체로 풍요롭고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사람과 바다가 공존할 수 있어야 해요. 바다 정화 사업 같은 것들이 활성화 되었으면 해요. 저는 앞장서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다가 깨끗해져서 사람들이 다시 많이 돌아오면 좋겠어요”   

바다에 나가지 않는 날에도 할아버지가 오래전부터 해 오던 굴 양식장 일을 거들기도하고 배를 정비하거나 어구를 관리하며 오롯한 ‘바다 사나이’로 살아가는 청년 어부, 최 씨. 

“어린 나이에 어부를 하니까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것 같긴 해요. 근데 제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 농사를 지어서 제 스스로는 그리 특별하게 못 느껴요. 다만, 큰 비전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저는 제 삶에 만족하며 사는 편입니다.” 

평범하지만, 또 특별하게 온 힘을 다해 살아내는 그의 하루가, 그의 발걸음이 더디어지지 않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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