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가 엊그제(22일) 지났다. 이날로부터 밤이 차츰 짧아져 내년 6월 21일이면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에 이를 것이다.

이 동지로부터 음(陰)의 기운이 약해지고 양(陽)의 기운이 강해지니 옛사람들은 이 동지를 설로 삼기도 했던 모양이다. 팥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집안 곳곳에 뿌려 나쁜 기운을 물리치려고 하는 풍습이 아직 남은 날이기도 하다. 

이 동짓날에 생각나는 옛 시는 아무래도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다. 동지가 든 달이 동짓달이니 음력으로는 11월에 해당하는 달이다. 밤이 길면 꿈도 많다는 말처럼 그리움의 꿈은 동짓달이면 더 불타올랐으리라. 이 동짓달에 한 번 읊조려볼 만하다 싶기에 이 시를 인용해 본다. 평시조 한 수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2006년엔가 한 시조 계간지에서 시조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옛시조를 추천받았더니 이 시조가 일등을 했다고 한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이 시조가 조선시대 여성의 시조로는 꽤 자유분방한 의지를 담고 있는 점에서 매력을 가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님이 곁에 없어 쓸데없이 길기만 한 이 밤의 한 조각을 덜렁 베어 따뜻한 이불 아래 고이 넣어 두었다가 그 님이 오신 밤이 되면 굽이굽이 펴서 더 긴 밤을 맞이하면 좋겠다는 발상이 새롭고 자유롭다. 양반댁 며느리가 아닌 기생이기에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다. 

황진이는 스스로 기생이 되었다 했다. 사랑의 대상도 자기가 선택하고, 그 이별도 자연스럽게 했다. 위 시의 대상이 된 사람은 이사종이란 사대부라 했다. 그 사람에게 반해 6년을 살자 했는데, 3년은 재물을 가지고 서울로 가 첩살이를 깍듯이 하고, 3년은 송도로 와 이사종의 보살핌을 받고 난 후 헤어졌다 한다. 어떤 사람은 이 일을 두고 우리나라 최초의 계약결혼이라 하는 모양이다. 

앞서 말한 좋아하는 시조 추천에서 이등을 한 옛시조는 역시 기생인 홍랑의 시조 「묏버들 가려 꺾어」이다. 십대 후반에 삼십대 중반의 벼슬아치 최경창을 만나 6개월을 섬겼는데, 이 최경창이 서울로 전보되어 헤어지게 되었기에 그를 멀리 전송했다가 이별 후 지어 보낸 시조라 한다. 관가에 소속된 기생은 그 소속된 곳을 함부로 떠나지 못한다는 법이 있어 떠나는 님을 따르지 못한 안타까움을 드러낸 시다. 역시 평시조 한 수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로/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버들은 꺾어서 심으면 쉽게 뿌리를 내리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 한나라에서는 절류(折柳)라 하여 이별의 때에 이 버들을 꺾어 주며 후일을 기약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 버들가지가 잘 살면 그 인연이 이어질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홍랑의 시조는 은근히 사람을 끌어들이는 여리면서도 은근한 의지가 매력이다.

한편, 그 시조 추천에서 현대시조 일등은 이은상 선생의 「가고파」가 차지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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